간호사, 헤어디자이너... 못다 이룬 '이태원 청춘'들의 꿈

입력
2022.11.01 04:00
3면
간호사 준비하고, 최근에 헤어숍 실장 되고
이제 청춘인 자식 잃은 부모들 오열·허탈감
빈소 안내 스크린엔 유난히 앳된 영정사진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간호사가 되겠다며 올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지난달 30일 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영안실에서 딸 박모(27)씨의 시신을 확인한 A씨는 계속 흐느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 달 전 딸과 간 여행 얘기를 힘겹게 꺼냈다. 오래전 이혼해 홀로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위해 딸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여행지에서 박씨는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우리 더 행복하게 살자. 내가 더 앞으로 잘할게”라고 엄마에게 약속했다. 그 여행이 모녀의 마지막 동행이 될 줄 그때는정말 몰랐다.

전날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수많은 사회초년생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체 사망자 154명 중 103명이 20대다. 그 때문일까. 못다 이룬 청춘의 꿈을 애통해하는 절규가 빈소마다 메아리쳤다.

최모씨도 그중 한 명이다. 헤어디자이너로 일했던 최씨는 얼마 전 ‘실장’ 직함을 달았다. 31일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최씨의 아버지는 “미용 관련 학과에 입학했지만, 처음엔 적성에 맞지 않아 고생을 했다. 겨우 마음을 잡고 수습기간 3년을 버텨 지금 자리까지 갔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씨 여동생은 “가족 모두 외향적인데 언니가 특히 밝은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동생의 말처럼 영정사진 속 최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한국에 왔다가 사고를 피하지 못한 희생자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한국, 이중국적자인 김모(24)씨는 두 달 전 한국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2개월짜리 국내 대학 외국인 어학당에 등록했다. 친척집에서 머물던 김씨는 원래 참사 1주일 뒤인 7일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로 돼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이는 아버지 친구 B씨였다. 급거 귀국길에 오른 부모를 대신해 동국대일산병원을 찾은 B씨는 “이날 새벽 친구로부터 ‘아들이 하늘로 갔다. 그래서 서울에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김씨를 붙임성 좋고 명랑한 아이로 기억했다. “4년 전 오스트리아에서 봤을 때 친구 아들이 한국에 들어가서 한국말 좀 배우고 싶다고 한 게 기억이 납니다.”

대부분 희생자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된 탓인지, 유족들의 울음소리는 더 처연하게 들렸다. 이화여대목동병원에 20대 딸의 빈소를 마련한 한 어머니는 “○○야, 제발 나 좀 데려가”라고 소리쳐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이 병원의 또 다른 20대 희생자 박모씨는 빈소를 안내하는 사진 속에서 한 손으로 얼굴에 ‘꽃받침’ 포즈를 하고 있었다. 너무도 앳되고 화사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추모객들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박지영 기자
이유진 기자
오세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