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사람 괴롭히는 '그날의 악몽'...전문가들이 우려하는 후유증

입력
2022.1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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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골목'에서 참사 겪은 사람 수천 명
전례 없었던 비극 목격에 PTSD 불가피
"우려되는 상황, 세심한 지원 필요"

삶과 죽음이 엇갈린 건 순간이었다. 지난 29일 밤 154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 벌어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갇혔던 사람은 대략 수천 명. '죽음의 골목'에서 빠져나왔거나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인원은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

참사를 겪은 건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고 친구, 가족, 지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전쟁 상황이 아닌데도 곳곳에서 동시에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는, 대한민국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참혹한 현장을 경험했다.

참사 후 이틀이 지난 31일 의료계에서는 이들이 겪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종하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고 당시 상황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악몽을 꾸거나 불안 증상, 무기력증, 불면증에 시달릴 경우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평소보다 활동량이 줄고 좁은 골목을 보면 두려워한다거나 사고 현장과 비슷한 환경을 회피하는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평가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 거의 다 청년이란 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할 지점이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젊은이들이 기성세대보다 힘든 일을 덜 겪었기에 트라우마에 취약할 수도 있다"며 "정부가 정신적 피해 지원시 이런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증상이 천차만별이지만 이상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상담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이정석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증상이 가볍다고 그냥 넘기면 안 된다"며 "만성화가 되면 치료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 국민도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는 만큼 당분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전날 성명을 발표해 "사고 당시 현장 영상과 사진을 여과없이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이런 행위는 2,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이동우 교수는 "SNS에서 관련 영상을 반복해 보거나 공유하는 행동은 트라우마를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참사로 중상자 36명을 포함해 13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중상은 강한 흉부 압박으로 인한 폐좌상이나 늑골 골절, 팔다리 골절 등으로 파악된다. 참사 당일 현장으로 달려가 피해자 구호 활동을 벌였던 노영선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경상으로 퇴원한다면 후유증이 전혀 없을 거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후유증 정도가 심하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현장에서는 너무 놀라 통증을 못 느낀 경우도 있을 텐데, 안정을 취한 이후 호흡곤란 등이 생기면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창훈 기자
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