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더니 잠시 후 우리 가게 앞까지 밀려왔어요. 밖을 내다보니 경찰관이 한 명도 없어서 ‘이거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9일 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직접 목격한 상인 A(80)씨의 말이다. 30일 만난 A씨는 경찰, 소방 등 관계당국이 최초 사고를 인지한 전날 오후 10시 15분보다 훨씬 앞서 문제가 심각했다고 증언했다. 초저녁부터 명백한 위험 신호가 있었는데도,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도 일치했다. 인근 순천향대 서울병원에서 만난 B(24)씨는 “사고가 나고 30분 뒤에야 경찰관 4명이 도착했다. 30분이 천년 같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날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근처에 있었던 김승환(22)씨도 “골목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지 오래됐는데도,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 사고 발생 전 경찰의 치안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앞서 서울 용산경찰서는 29일부터 3일간 총 200여 명의 경력을 투입해 “시민 안전과 질서 유지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지만, 운집한 인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도로 통제 등의 조치는 전무했다. 통상 집회ㆍ시위에 인원이 몰리면 도로 차량 통행을 제한하고 보행자 이동에 필요한 차도를 확보하는 게 관행인데, 이날은 그런 기본적 통제조차 없었다는 의미다. 20만 명 인파가 예상됐던 2017년 핼러윈 당시 경찰이 도로 인근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보행자 통로를 넓힌 것과 대비된다.
경찰은 사고 당일 구체적 활동 내역에 함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안전 활동을 수행했다”고만 설명했다. 사고 발생 당시 경찰 배치 여부에도 “확인 중”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심지어 이태원에 배치된 경력도 예고(200여 명)보다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용산서 발표와 달리 전날 현장 부근에 있던 경찰관은 137명이 전부였다. 서울경찰청에서 파견한 형사, 교통, 관광경찰대 55명을 합한 수치다. 이는 2020년 방역 수칙 위반 단속을 위해 투입된 합동 점검반 인원(140명)보다 적다.
거리두기 해제 후 첫 핼러윈 축제에, 그것도 최소 10만 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도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경찰의 오판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9일 이태원역 승ㆍ하차 인원은 13만131명으로 집계됐다. 전년(5만9,609명) 대비 218% 늘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핼러윈(9만6,463명) 때와 비교해도 30% 이상 폭증했다. 도보나 버스, 자가용 등을 이용해 이태원을 찾은 시민은 제외한 게 이 정도다. 경찰은 애초 배치된 경력이 162명이라고 했다가 정정하는 등 계속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장소가 마침 용산 대통령실과 지척이다보니 대통령실을 경호하는 경찰 인력과도 비교된다. 대통령실은 101ㆍ202경비단과 22경찰경호대가 경호ㆍ경비 업무를 담당하는데, 101경비단은 650여 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2경비단도 비슷한 규모로 추정된다. 22경찰경호대 인원은 120명 수준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