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70년 더 있어 달라고 했잖아. 미역국은 아빠 보고 끓여달라며, 너 없이 아빠는 어떻게 살라고...”
29일 밤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딸 A(25)씨를 잃은 아버지 눈가엔 눈물 자국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A씨는 30일 오전 서울 강북삼성병원으로 뇌사 상태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병원에서 사망진단서가 담긴 종이봉투 2장을 받아 든 A씨의 아버지 B씨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흐느꼈다. A씨는 아버지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거기를 왜 갔을까. 우리 딸이. 아빠한테는 늘 안전을 강조했잖아, 사람 많은 데는 피하라고.” B씨는 눈물을 참으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울음소리는 좀처럼 삼켜지지 않았다.
A씨는 사고 당일 친구를 만나려고 경기 부천에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으로 왔다. 딸이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시간은 오후 6시 32분. “친구랑 친구 남친(남자친구) 소개받는데 같이 놀다가 친구네서 잘 것 같아요. 오늘 집 올 때 조심해서 오십쇼.” B씨는 “딸이 헤어디자이너를 하다가 잠시 쉬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며 “가끔 친구네서 자고 오곤 해서, 그날도 평소처럼 그런 줄 알았다. 아침에 뉴스를 보고도 설마 우리 딸이 이태원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A씨는 백혈병에 걸린 아빠를 위해 3년 전 골수 이식까지 해줬다. 이날 병원을 함께 찾은 B씨의 지인 C씨는 “나도 B씨에게 헌혈은 해줬지만, 골수이식은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해서 못 했는데, 기특하게도 B씨의 딸이 나서서 해줬다”고 말했다.
B씨는 휴대폰에 딸을 ‘보배’라고 저장해뒀다. “항상 살갑고, 속이 깊었어요. 제가 혼자 키웠는데, 항상 아빠한테 고민 상담을 하곤 했어요. 빈말이라도 ‘역시 아빠 말 듣길 잘했다’라고 말하고요.” 그와 딸의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사랑한다’ ‘하트’ ‘진지 꼭 챙겨 드세요’라는 말이 가득했다. B씨는 최근 생일 날 딸이 보낸 장문의 편지를 보여주며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딸에게 말했다. “아빠가 미안해, 너무 미안해. 다음 생에도 아빠 딸 해줘.”
사망자 시신이 안치된 서울과 경기지역 병원에는 이른 시간부터 가족과 지인을 찾으려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군 휴가 중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막내아들, 성실히 직장 생활하던 딸의 시신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이들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떨리는 목소리로 사망자 이름을 읊으며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을 찾은 안모(55)씨는 “어제 자정쯤 딸이 숨졌다는 연락을 받고 10시간 넘게 찾아 다녔지만 아직 딸 얼굴을 보지 못했다”면서 “경찰은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부모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다”며 한탄했다.
병원에 도착한 이들은 애타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 실종자의 부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말문을 열지 못한 채 도로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여자친구를 찾으러 왔다는 20대 남성은 순천향대 장례식장 입구에서 “마지막 휴대폰 위치가 여기로 뜬다는 연락을 받아서 왔다”며 “얼굴이라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읍소했다. 스리랑카 출신의 한 남성은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가 어젯밤부터 연락이 끊겨 신고하고 오는 길”이라며 “다른 병원에 가봐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국대병원에는 사망자 14명의 시신이 안치됐다. 사망자 신원 확인 절차가 진행되면서 유족들은 연락을 받고 급하게 이곳을 찾았다. 안치실에서 시신을 확인한 유족들은 통곡했다. 영결식장 안에선 “우리 딸 어떡하냐”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사고가 날 수 있냐”며 울음 섞인 목소리가 연신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