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직원 한마디에 해고"...직장인 80%가 보고 겪은 '원청 갑질'

입력
2022.10.30 15:43
직장인 10명 중 8명 "원청이 하청에 갑질"
임금 차별, 위험 업무 전가, 휴가·명절선물 차별
직장갑질119 "원청 책임 분명히 할 법 필요"

직장인 10명 중 8명이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업체의 갑질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로 정당하지 못한 임금차별이나 위험한 업무의 전가, 휴가일수·명절선물 차별 등의 갑질이다. 하청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원청 갑질과 손해배상 특별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원청으로부터 12종의 갑질 중 어느 하나라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 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8.7%였다고 30일 밝혔다.

가장 자주 경험하거나 본 갑질은 임금차별(62.5%)이었다. △위험 업무 전가(56.3%) △휴가일수 차별(52.3%) △명절선물 차별(50.6%)이 뒤를 따랐다. 이외에 원청회사 직원이 하청회사 직원을 괴롭히거나 성희롱을 저지르는 것을 보거나 겪었다는 응답도 각각 27.9%, 18.1%였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은 처벌조항이 있어도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은 직장이 달라 적용이 안 된다고 직장갑질119는 덧붙였다.

카드사 재하청업체에 다녔다는 정보기술(IT) 개발자 A씨는 "예전에 프로젝트 업무를 할 때 나를 싫어했던 카드사 직원이 (이번에) 우리 회사 사장에게 압력을 넣어 결국 사장이 미안하다며 내게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면서 "원청 직원 한마디에 아무런 잘못도 없이 쫓겨나야 했다"고 토로했다.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B씨도 "원청 직원이 우리 회사 창고가 아닌 다른 창고 작업을 요구했는데 거리가 멀어 교통비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면서 "나중에 확인하니 그날은 일당이 지급되지 않았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원청의 갑질을 보거나 겪은 직장인 중 53.7%는 참거나 모르는 척 넘기는 경우도 많았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률(21.1%)이 회사나 노동조합·기관 등에 신고한 비율(16.2%)보다 더 높았다. 직장갑질119는 "비상용직, 비사무직에서 원청의 갑질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가 더 많았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도 이들에게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원청 직원이 갑질을 해도 하소연할 방법이 없고, 용기를 내 노조를 만들어도 원청과는 교섭조차 할 수 없다. 원청이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데, 교섭이나 단체행동을 하지 못하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하청노동자 보호와 차별·갑질을 막기 위해 원청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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