덖지 않은 국화차 만들기

입력
2022.10.30 22:00
27면

상강 즈음이면 산들에 국화가 한창이다. 나도 몇 해 전 국야 농원의 협찬 덕에 농막 경사지에 온갖 국화를 가득 식재한 터라 이맘때면 농막 주변이 국화향으로 몸살을 앓는다. 벌과 나비도 신이 나 덩달아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닌다. 국화를 키우기 시작한 이후 매년 이맘 때면 빠뜨리지 않고 하는 일이 바로 국화꽃을 따서 국화차를 만드는 것이다. 국화 잎도 사용은 가능하지만 모양 때문에 되도록 꽃만 채취한다.

구절초, 감국, 산국, 쑥부쟁이류, 개미취 등 가을 국화는 종류도 많지만 국화차를 만드는 꽃은 주로 감국과 구절초다. 쑥부쟁이는 향이 덜 하고 한약재처럼 쓴맛이 있으며 산국도 쓴맛 때문에 차로 쓰려면 따로 방법을 취해야 한다. 이곳에 심은 국화는 토종구절초, 감국 등을 개량했기에 흰색, 붉은색, 분홍색 등 색이 다양하고 향기도 더 진하다. 아내가 이곳 국화차를 좋아하는 이유다. 내가 매년 빼먹지 않고 국화차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내도 거들겠다고 나서 난 구절초를 따고 아내한테는 감국을 맡겼다.

"수정하기 전 아이들로 거둬요. 수정이 끝나면 아무래도 향도 모양이 빠지니까."

"그건 어떻게 아는데요?"

"아, 수정이 끝나면 꽃잎에 붉은빛이 돌아요. 보면 알아."

국화차를 만드는 일은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깨끗한 꽃을 하나씩 따서 식초 탄 물에 담아, 남아 있을 벌레나 오물을 제거한 뒤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소금물에 살짝 쪄서 말리는데 꽃잎이 워낙 여린지라 하나하나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꽃송이를 하나씩 뜨거운 물에 살짝 담그기도 하고 철판이나 후라이팬에 덖기도 한다지만, 그거야 차 제조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 얘기고 나로서는 능력도 부족하고 사실 이 정도로 충분히 차 몫을 한다.

SNS에 국화차 사진을 올리고 국화차 만드는 방법을 적어 올리자 누군가 "사 먹는 게 더 싸겠다"며 시간낭비라고 장난처럼 타박한다. 평생을 자본주의의 수동적 소비자로 살았다. 더 늦기 전에 돈이 아니라 최대한 내 몸과 손에 의지해 살고 싶었다. 직접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고 장과 술을 담가 쓰려는 이유도 그래서다.

DIY(Do It Yourself)의 의미와 가치가 그런 것이 아닐까? 늘 돈으로 서비스와 재화를 구한다면 직접 경험할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경험하지 않으면 실제로 어떤 일인지 결코 실체를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개념으로만' 아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무엇이든 직접 해봐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우리가 사는 삶과 환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직접 경험의 중요성이라면 세기의 복서 타이슨의 저 기막힌 명언도 있지 않던가!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직접 얻어맞기 전에는!" 편하고 편리하게만 살 것이냐 아니면 조금은 가난하고 불편해도 뭐든 깨달으며 살 것이냐가 꼭 선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보기엔 궁색하고 궁핍해 보일지 몰라도 나로서는 이만큼 사치스러운 삶이 없다.

아무래도 국화차의 백미는 바싹 말린 국화로 다시 차를 만들 때일 것이다. 75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꽃송이 서너 개를 넣으면 차가 우러나며,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듯 국화꽃이 다시 피어난다. 잔뜩 오므린 꽃잎을 활짝 펼치고 빛깔도 향도 생전의 화려함을 되찾는다. 보라, 저 가을 꽃송이들의 아름다운 부활을!


조영학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