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가 성평등을 향한 여정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뉴질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에서 여성 의원 수가 남성 의원 수를 앞질렀다. 여성 과반 의회는 전 세계에서 6개국밖에 없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호주 ABC방송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노동당 소속 여성 정치인 소라야 피키 메이슨 의원이 새로 취임하면서 ‘여성 의원 60명, 남성 의원 59명’으로 성비가 역전됐다. 피키 메이슨 의원은 아일랜드 주재 대사로 임명돼 사임한 트레버 말라드 국회의장의 의원직을 승계했다.
피키 메이슨 의원은 “나에게는 특별한 날이고, 뉴질랜드에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국민당 소속 니컬라 윌리스 의원도 “여성이 공직 사회에서 평등하게 대표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 나라에서 내 딸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기쁘다”고 환영했다.
지난 7월 크리스 파포이 전 법무장관의 정계 은퇴로 공석이 된 뉴질랜드 서부 해밀턴 웨스트 선거구에서 12월에 보궐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라 성비는 다시 바뀔 수 있다. 그래도 ‘여성이 의석 절반을 차지했다’는 성취는 훼손되지 않는다. 국제의회연맹 조사에 따르면 여성 의원 비율이 50% 이상인 나라는 뉴질랜드를 비롯해 르완다(60%) 쿠바(53%) 니카라과(51%) 멕시코(50%) 아랍에미리트(50%)뿐이다.
전 세계 193개국 평균 여성 의원 비율은 26.4%에 불과하다. 여성 장관 비율은 21%로 더 낮다. 그마저 젠더, 가족, 아이, 노인, 환경 관련한 업무에 치중돼 있다. 유엔여성기구는 “현재 같은 진보 속도라면 2063년까지 국가 입법 기관에서 성평등은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의미에서 뉴질랜드는 단연 돋보이는 모범 사례다. 현직 총리도 여성, 대법원장도 여성, 영연방 수장인 영국 왕을 대신하는 총독도 여성이다. 2017년 취임한 저신다 아던 총리는 이듬해 재임 중 아이를 낳았다. 현직 국가 수반이 출산한 건 1990년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 이후 세계에서 두 번째였다. 아던 총리는 6주간 출산 휴가를 다녀왔다.
그뿐 아니다. 2020년 총선에선 커밍아웃한 성소수자(LGBTQIA) 의원이 12명이나 탄생했다. 덕분에 뉴질랜드 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퀴어 친화적 의회’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국가다운, 역사에 남을 기록들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미국과 유럽 등 민주국가에서조차 여성의 권리가 후퇴하고 있다. 미국은 헌법에 보장된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폐기했고, 여성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업무 외 시간에 파티를 즐겼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비판받았다. 세라 리우 영국 에든버러대 정치학 조교수는 “여성의 대표성을 보장하고 정치기구에서 성평등을 이루려면, 정치의 모든 측면에서 ‘젠더’ 문제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