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한 지 9시간여 만에 울릉도 방향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한미가 진행 중인 대규모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2일 사상 처음으로 탄도미사일을 북방한계선(NLL) 이남 공해상에 떨어뜨렸고 이를 포함해 하루에만 동서해를 향해 25발 가량의 미사일을 무더기 발사하면서 대남 무력시위 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이다. 강대강으로 치닫는 북한과 한미 간 대결 구도에 군사 충돌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 군 서열 1위인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1일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이 우리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기도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수한 수단들은 전략적 사명을 지체 없이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남조선은 가공할 사건에 직면하고 사상 가장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이것을 단지 위협성 경고로 받아들인다면 큰 실수"라고 강조했다.
담화 공개 후 9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부터 북한은 동해와 서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포함해 미사일 25발 가량을 퍼부었다. 특히 SRBM 중 1발은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울릉도 쪽을 향했다. '끔찍한 대가'라는 박 부위원장의 발언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준 셈이다.
박 부위원장은 담화에서 지난달 31일 시작된 비질런트 스톰 훈련을 겨냥해 "규모를 놓고 보나 이라크를 침략할 때 사용한 '데저트 스톰'의 명칭을 본딴 것을 놓고 보나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훈련 시작 당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도 "강화된 다음 단계 조치"를 언급했다.
공군력이 취약한 북한은 최근 한미 연합훈련 중 이번 훈련을 가장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미는 이번 훈련에서 '역대 최대 규모'를 부각하면서 대북 억제력 강화를 과시하고 있다. 2015년 '비질런트 에이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훈련은 2018년 전투준비태세종합훈련(CFTE)이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소규모로 진행됐다. 그러다 올해 '비질런트 스톰'으로 이름을 바꿨고, 미 공군의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인 F-35B 4대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 지상기지에 전개하는 등 훈련 규모를 강화했다.
박 부위원장은 담화에서 "미국과 동맹에 대한 북한의 어떤 공격도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미국 핵태세검토보고서(NPR)도 언급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에 "북한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며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한미의 압박에 북한은 핵무력 사용을 시사하고 있다. 울릉도를 겨냥한 이번 도발이 NLL을 넘겼던 과거 포 사격에 비해 위협적인 이유도 전술핵을 SRBM에 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부위원장이 언급한 '특수한 무기'가 핵무기라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9월 북한이 법제화한 새 핵무력 정책은 핵 사용조건으로 '국가지도부에 대한 공격 임박' 등을 두고 있다.
북한의 도발은 한미와 대치 구도에서 계속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북한은 한미에 비해 열세인 재래식 전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핵무력을 과시하며 연합훈련 중 도발을 벌이는 새로운 패턴을 선보이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질런트 스톰 훈련에 직접 대응하기 어려우니 이례적으로 울릉도 인근을 노린 계산된 행보"라며 "한미와의 대치에서 자신들이 지는 형태로 절대 도발을 끝맺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실험 외에도 남측과 군사충돌을 불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한미의 압박을 핑계 삼아 의도적으로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고, 핵실험 이후 '핵보유국 인정'을 노리려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 위협'이 눈앞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의 '선제 타격' 언급에 박 부위원장 담화와 함께 대남사업 총책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공개하는 등 말폭탄 수위를 최고조로 높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