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80분간 생중계로 진행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시작하며 관계부처 장관 및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등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복합 경제 위기를 마주한 한국 경제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참모진 사이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참석자들은 윤 대통령의 독려에 맞춰 분야별 대책을 실시간으로 소개하며 새 정부의 위기 극복 의지를 부각했다.
이날 회의는 각 방송사를 통해 80분간 생중계됐다. 지난 7월부터 매주 열렸던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평소 다변가(多辯家)로 알려진 윤 대통령은 자신이 발언을 독점하기보다는 장관들에게 주로 마이크를 넘겼다. 윤 대통령은 "제가 우리 장관들을 골탕 먹일 질문을 던질 거라는데 경청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해달라"며 연신 참석자들에게 적극적인 발언을 유도했다.
회의 주제는 '경제 활성화 추진 전략 및 점검'이었다. 최상목 경제수석이 5개 분야(주력산업 수출, 해외건설·인프라 수주 확대, 중소·벤처기업 지원, 관광·콘텐츠산업 활성화, 디지털·헬스케어산업 발전 방안)로 주제를 나눠 관계 장관들의 발제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쇼 연출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해놨다"고 밝힌 만큼,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등도 생략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이라며 "수출 활성화가 핵심 키인 만큼 수출 동력을 발굴하고 총력 지원하겠다"고 발제에 나섰다. 그러자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반도체 등 주력 산업 활성화를 위해 "민간 기업이 계획하는 340조 원 규모 투자가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소개했다. 윤 대통령은 이창양 장관에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은 외교부 등 다른 부처나 기업과 공유해달라"고 즉석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 과제 달성을 위한 부처 간 소통을 당부했다. 이창양 장관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각각 원전과 방산 수출계획을 설명하자, 윤 대통령은 "중동지역과 유럽지역에 원전과 방산의 패키지 수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정부 부처가 합심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산업부, 국방은 방위산업부, 국토교통부는 인프라건설산업부가 돼야 한다"며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민간 주도 경제성장을 위한 정부 지원을 강조했다. 특히 "새 정부의 기본적인 경제정책 방향은 공정한 시장질서하에서 기업들이 창의와 자율로써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 관리를 한다는 것"이라며 "민간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더 좋은 유니폼과 더 좋은 운동화를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현 경제상황에 대해 "전 세계적인 고금리에 따라서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실물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는 제일 먼저 물가 관리를 통해서 실질임금 하락을 방지하고 서민생활 안정을 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삼았다"며 민생경제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회의 후 서면 브리핑에서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국민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도록 정부 각 부처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뤄졌다"며 "윤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각 부처가 추진해온 경제활성화 대책을 국민께 소상히 보고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답보 상태인 국정 지지율 반등을 위한 '보여주기식 회의 생중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회의에선 인수위 때부터 밝혀온 국정과제보다 더 나아간 비전 등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노동·교육·연금·인구 개혁과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 얘기가 없었다"며 "경제 위기 핵심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