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때려잡는 월드컵"… 카타르 인권탄압에 보이콧 확산

입력
2022.10.26 20:20
18면
카타르, 반동성애법 유예 공언하고도 LGBT 탄압
축구장 등 건설현장서 이주노동자 6,700명 사망
축구팬 "월드컵 보이콧" 요구… 파리 응원전 취소

월드컵은 명실상부한 ‘지구촌 최대 축제’라 불리지만, ‘지구촌’에 성소수자(LGBT)와 이주노동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2022카타르월드컵 개막(다음 달 22일)을 앞두고 카타르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며 대회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성소수자 용인한다더니… 뒤에선 무자비한 탄압

25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영국인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피터 태첼이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카타르 정부의 성소수자 탄압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게 저지당했다. 당시 태첼은 “카타르가 성소수자를 체포, 구금, 개조한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시간 동안 서 있었다. 현장 영상에는 경찰이 손팻말을 빼앗고, 태첼의 여권와 서류 등을 촬영하는 장면이 녹화됐다.

태첼은 성명에서 “나는 체포됐다 풀려났으며, 가능한 한 빨리 카타르를 떠나는 것이 이로울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나는 체포, 수감, 고문 위험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카타르 인권 옹호자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카타르 정부는 “루머”라고 일축했다. “교차로에 서 있던 사람(태첼)에게 인도로 이동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을 뿐”이라면서 “부정적 여론을 유발할 의도로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서 동성애와 성전환은 불법이다. 적발되면 벌금형 또는 7년 이하 징역형을 받고, 경우에 따라 사형에도 처해진다. 올해 초 커밍아웃한 호주 축구 스타 조시 카발로는 “카타르월드컵에 나가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두려운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국제적 논란이 커지자 올해 6월 카타르 정부는 동성애 금지법의 적용을 월드컵 기간에 한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최근 카타르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성소수자도 얼마든지 손잡고 다닐 수 있고, 그로 인한 차별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24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에도 카타르는 성소수자들을 단속했다. 특히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화장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길거리에서 무단 체포돼 지하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았고, 성추행도 당했다.

휴먼라이츠워치 인터뷰에 응한 카타르 성소수자들은 "'부도덕한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서약서를 당국에 제출한 뒤에야 풀려났다. 트랜스젠더들은 석방 조건으로 정부가 지정한 의료센터에서 '다시 남자로 만들어 줄 전환 치료'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다고 폭로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카타르가 월드컵 기간 반동성애법을 예외로 두기로 한 결정은 카타르 시민과 성소수자들에게 기본권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숱한 목숨 앗아간 축구장… 축구팬 “월드컵 보이콧” 요구

이주노동자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2010년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한 이후 10년간 축구장, 호텔, 공항, 도로 건설 등에 동원된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6,700여 명이 숨졌다. 그중 69%가 ‘돌연사’로 분류됐는데, 무시무시한 폭염과 열악한 노동 환경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수자를 철저히 배제하는 나라에서, 숱한 목숨을 앗아간 경기장에서 관중들이 마음껏 환호하며 경기를 즐길 수는 없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축구팬 사이에선 카타르월드컵 보이콧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독일 축구팀 보루시아도르트문트 서포터들은 25일 2022~2023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영국 맨시티와의 경기 도중 ‘보이콧 카타르 2022’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보이콧 문제를 공론화했다.

덴마크 국가대표팀은 유니폼에 후원사 로고를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 서드 유니폼은 애도 의미를 담은 검은색으로 제작하는 등 카타르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직접 담았다. 프랑스 파리와 스트라스부르, 릴, 보르도 등에선 “이번 월드컵 조직 과정의 환경·사회적 여건”을 이유로 거리 중계와 응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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