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대학원생 강모(37)씨는 요즘 관악구 전용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두잇'을 통해 동네 주민들과 함께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배달공구'에 열심이다. 1만 원이 안 넘는 냉메밀을 주문해도 배달비 2,000원이 붙는데, 동네 주민 두 명과 함께 하면 이를 아낄 수 있다. 강씨는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추가 주문을 할 필요 없다"며 "한끼에 2,000~8,000원 아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 최악의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눈물겨운 '짠테크'(짠내+재테크)에 나서고 있다. 공동 구매와 중고 거래는 기본, 하루에 특정 금액만 쓰는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티끌'을 모은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푼이라도 아껴 팍팍해진 주머니 사정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30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공동구매 서비스 '같이사요'에 올라온 게시글 수가 직전 3개월 대비 45%나 늘었다. '같이사요'는 동네 주민들끼리 다양한 물건을 함께 사고 생활비를 아끼는 서비스인데, "채끝살 1kg이 너무 많다. 나누자"는 등 식재료를 대량 구입해 소분하자는 제안이 눈에 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서비스 초반 택배비, 배달비를 아끼려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많았다"며 "물가가 많이 오른 요즘은 단가가 높지 않은 식재료나 생필품도 함께 사려는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배달도 공동구매가 대세다. 쿠팡이츠는 8월부터 각자 주문하되 같은 장소에서 수령하는 '친구 모아 함께 주문'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최근 배달의민족이 시작한 '함께 주문' 서비스는 다른 사람들과 장바구니를 공유해 함께 메뉴를 담은 뒤, 한 명이 결제하는 방식으로 배달비를 절약한다.
아파트 단지 내 아기 엄마들은 중고거래를 위한 단톡방을 따로 만든다. 잠깐 쓰고 버리는 아기용품은 비용 부담이 커 중고거래가 필수이기 때문. 한 살 아기를 키우는 주부 김모(36)씨는 "아파트 육아맘 단톡방에 하루에도 아기용품 무료나눔 글이 6, 7개는 올라온다"며 "얼마 전 30만 원이 넘는 아기장난감도 무료로 받아 돈을 크게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무지출챌린지', '#짠테크'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과 각종 기발한 생활비 절약 노하우들이 공유되고 있다. 최근 하루 5,000원만 쓰는 '오천원 챌린지'에 도전하는 직장인 조민경(21)씨는 "카드 대신 현금만 쓰면서 돈이 얼마나 나가는지 체감하고, 앱테크(앱+재테크)로 각종 포인트를 모은다"며 "번거롭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요즘 같은 때엔 아끼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기 위한 노력도 한동안은 계속될 전망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급등으로 올 하반기에도 식료품 가격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농심 등 라면업체 4개사가 최근 라면값을 9~11%가량 차례로 올렸고, 장류도 샘표·CJ제일제당·대상이 11~13% 올렸다. 연말에는 우윳값 인상도 남아 있다. 낙농가와 유업체는 이달 말 원유 가격 협상을 마칠 예정인데, 흰우유 소비자 가격이 최대 5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식비 다이어트' 열기도 뜨겁다. 최근 한 달(9월 25일~10월 24일) 동안 주요 대형마트 자체브랜드(PB)상품 매출을 보면 이마트 PB브랜드 '노브랜드'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 롯데마트는 PB상품이 15% 이상 증가했다.
외식비가 오르면서 점심시간 끼니를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직장인도 늘었다. 삼성웰스토리에 따르면 오피스 상권의 3분기(7~9월) 구내식당 이용률은 1분기(1~3월) 대비 서울 용산 55%, 경기 성남시 판교 72%, 서울 강남 42%로 증가했다. CJ프레시웨이도 전체 오피스 구내식당의 3분기 매출이 전 분기보다 11.5% 뛰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수요도 늘어 최근 한 달 동안 전년 동기 대비 △CU 18.9%, △GS25 45.4%, △세븐일레븐 20%, △이마트24 39%로 관련 매출이 늘었다.
짠테크 열풍에 대해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전까지 부동산에 주식, 비트코인 등 투자 욕구가 강했다면 상환의 압박이 생긴 지금은 아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한편으로는 짠테크를 일종의 체험, 놀이 문화로 즐기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