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첫 번째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기 위한 첫 삽을 떴다. 5월 방한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약속한 100억 달러(약 14조2,600억 원) 규모 투자 계획의 첫 단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원안 추진을 고수하고 있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서 전기차 전용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을 열었다고 26일 밝혔다.
55억 달러(약 7조8,000억 원)가 투입되는 HMGMA는 2025년 상반기 준공, 해마다 전기차 30만 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3개 브랜드 전기차를 모두 생산하고, 첫 생산 차종은 현대차 '아이오닉 5'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HMGMA는 같은 조지아주에 있는 기아 미국 공장과 차로 약 4시간, 앨라배마주 현대차 미국 공장과는 5시간 거리에 위치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배터리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HMGMA 인근 지역에 배터리셀 공장도 짓는다. 또 현대차 울산공장(승용 전기차), 기아 오토랜드 화성(목적기반전기차)에도 각각 연산 15만 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설립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생산 시설 확장을 통해 2030년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323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한다.
이날 HMGMA 착공을 위해 첫 삽을 직접 뜬 정 회장의 마음은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미국 정부가 IRA 관련 한국산 전기차 차별 해소 요청에 대한 똑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IRA 원안대로 시행되면 현대차그룹 전기차는 내년부터 미국 시장서 7,500달러(약 1,000만 원)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국내에서만 생산하는 현대차 '아이오닉 5'(3만9,950달러)는 미국에서 만드는 테슬라 '모델3'(4만6,990달러), 포드 '머스탱 마하-e'(4만3,895달러)보다 500~3,500달러 비싸진다.
게다가 착공식 하루 전인 24일(현지시간) IRA 시행령을 준비 중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IRA)법을 쓰인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내년 IRA를 원안대로 시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HMGMA 착공에 대한 축하 인사를 보낸 바이든 대통령도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공식에 참석한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라파엘 워녹 연방 상원의원, 존 오소프 연방 상원의원 등도 IRA와 관련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보조금 대상에서 빠지고 전기차 판매 급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그룹 경영진은 HMGMA가 완공되는 2025년까지 △판매보조금(인센티브) 제공 △가격 조정 등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앨라배마 공장에서 아이오닉 5를 만드는 방안을 두고 노조와 진행하는 협상도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 IRA 시행령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미국 국내 여론을 의식해 중간선거 때까지 IRA 시행령에 대한 언급을 자제할 것"이라며 "선거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시행령에서 한국산 전기차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현대차그룹과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