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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개인 삶을 구분하긴 어렵다. 회사에선 집안 걱정이 떠오르고, 퇴근해도 일이 집까지 따라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일이 삶을 집어삼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 ‘워라밸’을 처절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늘 수밖에. 만약 퇴근과 동시에 회사 일을 한꺼번에 잊게 된다면, 회사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세브란스: 단절’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공상을 바탕으로 서늘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미국 거대기업 루먼은 일과 삶을 구분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뇌에 칩을 이식하는 간단한 ‘단절(Severance)’ 시술을 통해서 누구나 회사 밖 자신과는 전혀 다른 자아를 가질 수 있다. 출근만 하면 바깥 기억은 사라지고, 새로운 자아는 직장 내 기억만 가진다. 집에 돌아오면 원래의 자아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었는지 전혀 모르는 식이다.
주인공 마크(애덤 스콧)는 ‘단절’ 시술을 받고 루먼에서 근무 중이다. 그는 막 팀장이 됐고, 신입사원 헬리(브릿 로워)를 맞았다. 마크를 포함해 팀원은 4명. 사무공간은 기이하게도 넓다. 팀 이름은 메이크로데이터 정제팀. 무엇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직장에 또 다른 자아가 산다면 행복할까. 마크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분명하다. 직장에서 다쳐도 이유를 알 수 없다. 회사가 직장 밖 자아에게 거짓으로 사유를 알리면 그저 받아들여야만 한다. 퇴근하면 회사 동료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단절’은 곧 소외와 외로움을 의미한다. 마크가 ‘단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아픈 기억을 직장에 있는 동안에라도 잊기 위해서다.
헬리는 골칫덩어리다. 퇴사하겠다며 매일 사고를 친다. 하지만 회사 밖 헬리의 자아는 퇴사를 완강히 거부한다. 마크와 팀원은 헬리를 적응시키는 과정에서 회사의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마크는 퇴근 후 자신의 직장동료였다는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마크의 직장 생활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드라마 속 주요 공간은 루먼 사옥이다. 마크와 팀원이 겪는 이상한 일들을 지켜보다 보면 물음표 하나가 점점 커진다. 루먼은 과연 어떤 상품을 만드는 회사일까. 예전에는 무엇을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이 됐을까. 그들은 왜 말도 안 되는 업무를 마크 등에게 지시하며 보안에 온 신경을 쏟는 걸까. 마크 등이 회사에서 쓰는 모든 물건에는 루먼 마크가 찍혀 있다. 무엇이든 돈 되는 건 다 파는 회사라는 암시일까.
드라마는 거대기업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다. 워라밸이 가능해졌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직원 정신까지 지배하는 기업의 악행을 드라마 속 허황된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