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하는 시네마투게더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가하게 된 연유였다. 시네마투게더는 2박 3일간의 일정 동안 열 명의 멘티 관객과 멘토가 선정한 영화를 함께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평소라면 온전히 내 취향대로 선택해서 관람했을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봐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책임감과 일종의 부담감도 생겼다. 고심 끝에 나는 이번 선택의 최우선 기준을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로 선정했다. 어떤 의미로든 모난 구석이 있거나, 형식이 생소한 작품들 중에 빛나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쉽게 개봉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은 영화들로 선정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장편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하기 전까지는 '시네필'(무료관람 등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영화를 많이 봐서 시네필이라기보다는 영화제에는 다양한 배지들이 있는데,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신청할 수 있는 시네필 배지가 있다. 시네필 배지를 신청하면 하루에 4편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이 시네필 배지도 만능은 아니다. 당연히 많은 영화 학도들이 그 배지를 갖고 있고, 화제작들은 금방 매진되기 일쑤였다. 당시 나는 당장의 가장 보고 싶은 영화들, 화제가 된 영화들 위주로 시간표를 짠 이후 치열한 티케팅에 참전했다.
하지만 대개 첫 번째로 선택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고, 같은 시간대에 상영하는 다른 작품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그런 영화들은 국내외 개봉이 쉽지 않은 작품이 대다수였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내 감상들은 작품마다 제각각 달랐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전방에 놓여 있는 영화들을 보는 소중함과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다. 운이 좋으면 다시 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아무리 볼 기회를 찾으려고 해도 다시 접할 수 없는 작품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영화들은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거의 모 아니며 도인 경우가 많다. 뚜렷하지 않더라도 빛나는 지점을 치열하게 탐구해 나가며 특별함을 획득해내는 영화도 있고, 때때로 만듦새가 너무 좋지 않아 끝까지 보는 것이 마치 훈련처럼 느껴지는 영화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의 좋고 나쁨을 떠나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설령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이 모나고 투박하게 빛나는 영화들을 보다 보면 영화의 순수함과 본질에 대해 더 강렬하게 각인되곤 한다.
2박 3일간의 여정 동안 여섯 편의 영화를 보는 내내 멘티들은 때때로 잠에 들기도, 빛나는 눈으로 열띤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중적인 영화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언제나 보편적인 이야기에는 힘이 있고, 또한 다수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평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혹여 개봉을 하지 않더라도, 그 영화가 실패에 더 가까이 놓여 있다 하더라도 영화를 보면서 빛나는 한 조각을 발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취다. 그 조각은 잊히지 않고 마음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인생을 보는 관점을 바꿀 수도, 삶의 시야각을 좀 더 확장시켜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만약 '왜 영화들은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가' 회의감이 든다면, 불쑥 영화제를 찾아 절대 개봉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어떨지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