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보호의 기적에서 억압·통제의 상징으로

입력
2022.10.27 04:30
26면
10.27 가시철조망의 탄생

19세기 미국 농부들에게 서부 평원과 남부 국경지대는 기회의 땅이었다. 황금을 찾아 떠난 골드러시의 ‘49ers’와 달리 그들은 개척자이자 정착민이었다. 곡식을 가꾸고 가축을 길러야 했다. 문제는 담장이었다. 동부 뉴잉글랜드와 달리 돌담을 두르려 해도 돌이 없고, 대서양 지역처럼 울타리를 엮을 나무도 드물었다. 해자처럼 고랑을 파보기도 하고 흙을 돋워 흙담도 세워봤지만, 평원의 거친 바람을 감당하지 못했다. 가시덤불을 담장처럼 재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시도도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돌과 나무를 사서 기차로 실어 오자니 돈이 너무 들었다.

울타리를 두를 수 없어 땅을 더 넓히지 못하던 개척시대의 딜레마를 해소해준 게 가시철조망이었다. 두 가닥 철사를 길게 꼬아 가시처럼 뾰족하게 자른 철사를 군데군데 고정시킨 철조망. 가시철조망 담장은 철조망과 달리 늑대 등 포식자의 접근을 막아주고, 무엇보다 저렴하고 튼튼했다.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농작물에 그늘도 드리우지 않고, 웬만한 강풍에도 끄떡없고, 눈이 쌓여 무너질 일도 없었다. 심지어 휴대도 가능했다. 방목 축산업자들은 이동 시 가시철조망을 걷었다가 새 목초지에 다시 두름으로써 24시간 가축을 지켜봐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그 간단한 발명품 덕에 개척시대에 숨통이 트였고, 대평원 농부의 삶도 획기적으로 편해졌다.

가시철조망은 일리노이주 드 칼브(De Kalb)의 농부 조지프 글리든(Joseph Glidden)이 발명, 1873년 10월 27일 미국 특허를 신청하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그는 카운티 박람회에서 헨리 로즈라는 이가 출품한 외가닥 철조망을 본 뒤 그걸 응용해 두 가닥 가시철조망을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잇달아 출시된 가시철조망 개발업자들의 특허 경쟁, 생산·판매 독점 경쟁이 계속됐고, 그러면서 빠르게 대중화됐다.
최근의 가시철조망은, 국제앰네스티의 로고처럼 억압과 통제의 상징으로 더 흔히 쓰인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