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패권 경쟁 시대를 맞이하여 미국에서는 현재의 도전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지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백악관을 위시한 행정부처는 물론 의회에서도 보고서와 법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민간 싱크탱크들도 현재 미국의 위기와 해결 방안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최근 출간된 많은 보고서 가운데 에릭 슈미트가 의장으로 있는 '경쟁력 특별연구프로젝트(SCSP)' 보고서가 필자의 눈길을 끈다. SCSP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특별연구프로젝트(SSP)'는 1950년대 후반 미소 냉전 당시 소련의 핵무장, 스푸트니크 발사 등이 제기하는 도전을 규정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록펠러 재단 후원으로 키신저가 의장으로 활약하면서 학계 관료 산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수행되었다. 외교 군사 경제 교육 민주주의 각 영역에서 제기되는 도전을 분석하고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여 묶은 'Prospect for America'가 1961년 출간되어 4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당대의 담론과 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에릭 슈미트는 미국 정부와 의회 지원하에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를 이끌며 최종보고서를 2021년 3월 출간하였고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반도체과학법 등을 통해 입법화되었다. NSCAI 해체 이후 출범한 SCSP는 지정학적 갈등, 신기술 부상,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당분간 '경쟁'이 미국 국가전략의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AI, 컴퓨팅, 5G, 바이오, 에너지, 스마트제조 기술이 미래 권력을 결정할 것이고 미국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10년 이내에 중국에 추월당할 위험이 크다.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당면한 6가지 도전을 민관협력을 통한 혁신, 디지털인프라·인재·금융 정비, AI 거버넌스 마련, 동맹국과의 협력, 첨단 국방기술력 제고, 인텔리전스 강화로 규정하면서 각 영역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본 보고서는 경제안보와 기술 경쟁력 강화가 특정 부처 주도가 아닌 다양한 부처 간 협력과 조정을 통해 가능하므로, 이를 주관할 새로운 정부 조직으로 기술경쟁력위원회(TCC), 국가 경제기술정보센터(NTEIC) 등 설치를 언급하고 있다.
보고서를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고서가 작성된 과정이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총 225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26회 이상의 패널 회의를 거쳤고, 총 400회 이상의 회의 및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공화당이나 민주당계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보고서 작성을 위해 이 정도 규모의 인력과 펀딩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 더욱이 정부가 아닌 민간 싱크탱크가 이를 주도했다는 것이 미국이 가진 저력으로 다가왔다. 이런 과정 자체가 미국 기술패권의 지속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국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안보 기술혁신 및 과학기술외교 전략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진행되는 소그룹회의나 보고서 작성도 의미 있지만 스케일을 확장하여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다양한 입장을 가진 학계 산업계 정부 전문가들이 모여 문제를 정의하고 해답을 모색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수행할 구심점 역할을 누가 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