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국 정치 권력의 핵심이다. 7명(시진핑 국가주석 포함)으로 구성된 상무위를 시진핑계가 싹쓸이했다. 시 주석을 견제할 유일한 세력으로 꼽히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은 절멸했고, 시 주석 측근 그룹인 시자쥔(習家軍) 출신이 빈자리를 꿰찼다. '7명 체제가 아닌 시진핑 1명 체제'로 봐도 무방하다.
23일 열린 20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상무위원 7명이 권력 서열 순서대로 입장했다. 시진핑(69) 주석, 리창(63·현 상하이시 당서기), 자오러지(65·현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왕후닝(67·중앙서기처 서기), 차이치(66·베이징시 당서기), 딩쉐샹(60·당 중앙판공청 주임), 리시(66·광둥성 당서기) 순이었다.
공청단 계열인 리커창(67) 국무원 총리와 왕양(67)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은 상무위에서 빠졌다. 리커창은 총리에서 물러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이동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빗나갔다. 두 사람의 퇴진으로 상무위의 인사 관례인 '7상8하(67세 이하는 유임, 68세 이상은 퇴임)'도 깨졌다.
시 주석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속한 공청단은 시 주석을 비롯한 공산혁명 원로의 후손이 주축인 태자당, 장쩌민 전 주석 계파인 상하이방과 함께 중국 3대 정파다. 개혁·개방 성향이 상대적으로 짙어 시진핑계를 견제할 유일한 세력으로 불렸다.
시 주석은 라이벌 세력의 '완전 제거'를 택했다. '리틀 후진타오'로 지칭되는 등 공청단 차기 대표주자로 꼽힌 후춘화 국무원 부총리도 퇴출시켰다. 2012년 최연소 중앙 정치국원으로 발탁된 그는 정책능력을 인정받아 5년 전 당대회에서 상무위 진입이 거론됐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번엔 리커창 후임으로 거명됐으나 상무위에도, 상무위 하위 기구인 정치국(24명)에도 들지 못했다.
상무위에 새로 진입한 리창, 차이치, 딩쉐샹, 리시는 모두 시 주석의 측근들이다. 리커창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 총리 영전이 유력한 서열 2위 리창은 2000년대 시 주석이 저장성 서기였을 때 비서장에 발탁돼 시 주석을 수행했다. 시 주석의 저장성 근무시절 핵심 인맥인 '즈장신쥔(之江新軍)'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서열 5위 차이치는 시 주석이 17년간 근무해 정치적 기반으로 꼽는 푸젠성 출신으로, 11년간 푸젠성 관리로 일했다. 2016년 당 중앙위원 몫인 베이징 시장으로 고속 승진해 시자쥔의 위세를 확인했다.
서열 6위 딩쉐샹은 시 주석의 상하이시 당서기 시절인 2007년 상하이시 당위원회 상무위원을 지내며 시 주석의 눈에 들었다. 시진핑의 국내외 출장마다 동행해 '시진핑의 그림자'로 불린다. 서열 7위 리시는 시 주석과 함께 근무한 적은 없다. 다만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 전 부총리 동료인 리쯔치 간쑤성 서기의 비서를 지낸 경력 덕에 시진핑계의 일원으로 꼽힌다.
상무위에 잔류한 서열 3위 자오러지와 4위 왕후닝은 시 주석의 신뢰를 거듭 증명했다. 자오러지는 시 주석 집권 1기 때 중앙조직부장을 맡아 후진타오·장쩌민 전 주석 계파를 밀어내는 공을 세웠고, 집권 2기엔 반부패 사정을 총지휘했다. 학자 출신 왕후닝은 시 주석의 최대 정치 슬로건인 '중국몽'을 설계했으며, 시 주석의 막후 책사로 불린다.
공산당 중앙정치국엔 여성이 전멸했다. 정치국이 남성으로만 채워진 건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유일한 여성 정치국 위원이었던 쑨춘란(72) 부총리가 명단에서 빠졌지만, 여성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이에 정치국 정원이 25명에서 24명으로 줄었다. 상무위도 남성 일색이어서 1949년 중국 건국 이래 '여성 상무위원 0명'의 역사가 이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