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 방산협력'만큼 뜨거운 폴란드의 K문학 사랑

입력
2022.10.23 12:00
25면

편집자주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대한민국이 글로벌 문화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K컬처가 현지문화와 융합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현장을 지키는 해외문화홍보원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20조 원의 한국산 무기를 구입키로 결정해 우리를 놀라게 했던 폴란드. 그 폴란드에서 영화의 도시로 유명한 바르샤바 남서쪽 '우치(Lodz)'. 필자는 576번째 한글날인 지난 9일 그 도시를 찾았다. 북아트 박물관과 함께 3일간 한글 축제를 열었기 때문이다. 직지와 훈민정음 영인본을 비롯, 한국 도서 및 폴란드어로 출판된 한국 소설을 전시했다. 우리말큰사전을 편찬하려는 노력을 담은 영화 '말모이' 상영, 한글의 탄생과 자모 주제 강연 등 다양한 행사가 축제에 활기를 더했다.

한 폴란드 관람객은 "한자를 쓰던 문화에서 한글이 어떻게 상용화되었는가?"라는 학구적 질문을 던졌다. 필자는 한글이 한국어를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문자라는 것과 한글 보급과정을 설명했다. 폴란드에서 한글의 가치를 이해하고 배우려는 사람들과 함께 한글날을 보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이다.

인구 3,800만 명의 폴란드에는 한국학과가 개설된 대학교가 5개 있다. 입학 경쟁률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우리 기업의 진출과 한류 영향으로 한국어, 한국문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다섯 번째 한국학과를 개설한 SWPS 대학교는 당초 20명을 선발하려던 계획을 수정, 40명의 신입생을 뽑았다.

폴란드 한국문화원은 학교 요청에 따라 지난 1년간 세종학당 교원이 출강, 한국어 수업을 지원했다. 1년 동안 우리 교원과 폴란드인 교원은 신규 학과의 새 커리큘럼과 시험문제를 만들었다. 신입생들이 1학년을 마칠 때에는 정확한 한국어로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 아래 기말평가로 3분 발표를 시도하여 학생들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국학과 개설 1주년을 맞아, 이달 초에는 신입생들을 한국문화원 한복주간 개막에 초청했다. 우리 전통문화 전시와 한글 서예, 한복, 민화 채색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행사였다. 학생들은 한국 민화에서 모란, 불로초가 부귀와 장생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흥미롭게 듣고는 스스로 비슷한 그림도 그려보고 한글로 이름을 써보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문학의 폴란드 내 출판도 활발하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을 때, 작가가 하루빨리 폴란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문화원과 현지 출판사가 의기투합했다. '저주토끼'에 수록된 마지막 단편 '재회'는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현지 언론은 폴란드인이 아닌 사람이 폴란드에 대해 쓴 가장 놀라운 텍스트라고 평한 바 있다.

지난달 24일 문화원에서 열린 '정보라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는 1,000여 명의 독자가 참석했다. 폴란드 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해 온 작가는 아름다운 폴란드어를 구사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한 독자는 "폴란드 사람은 달콤쌉싸름한 영혼의 멜랑꼴리를 슬라브 정신이라고 부르는데, 한국 문화에서 그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묘한 유사성을 느낀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우리 국력이 커지기 때문일까. 폴란드 사람들은 한국과의 문화적 접점을 발견하고, 우리가 오히려 감탄할 질문과 화두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런 소통과 교류의 과정 속에서 향후 지속가능한 한류의 가능성을 엿본다.





강은영 주폴란드 한국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