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은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라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에서는 안 써도 그만 아닌가 생각했죠. 힘들기도 하고, 어떻게 써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고요. 그랬다가 결국 쓰게 된 건 제 나이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에요.”
솔직하고 담백한 유홍준(73) 명지대 석좌교수의 화법은 여전했다. 유 교수는 25일 답사기 서울편을 완간하며 창작의 고통을 토로했다. 지난 2017년 서울편 1·2권을 출간한 후 5년 만에 나온 후속 3·4권이다. 글쓰기의 고단함을 무찌른 건 사명감. 유 교수는 이날 서울 마포 창비서교빌딩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보는 서울이 후대 사람에게 나름의 감명이 있을 것 같았어요. 어찌 됐든 한 시대 삶을 이야기하는 증언이 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그가 걸어온 여정을 생각하면 이 정도 고충은 토로할 만하다. 첫 답사기 ‘전남 강진ㆍ해남편’이 나온 게 1993년. 이후 29년 동안 서울편 3·4권을 포함해 12권이 출간됐다. 반응은 뜨거웠다. 시리즈 누적 판매는 500만 부. 서울편 1·2권은 2017년 출간 후 25만 부가 팔렸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라는 얘기다.
“어려웠다”고 거듭 되뇔 만큼 변화를 꾀했다. 앞서 서울편 1·2권이 조선 궁궐과 왕실 등 묵직한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 두 권은 옛 역사뿐 아니라 근현대 격변기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편 3권에서는 서촌, 북촌, 인사동 등 서울 사대문 안 오래된 동네와 북악산 이야기가, 4권에서는 한양도성 밖인 성북동, 봉은사, 망우리 공동묘지 탐방기가 펼쳐진다.
노련한 입담은 여전하다. “북촌이라고 하면 막연히 양반이 살던 한옥 밀집지역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조선시대 양반 집은 한 채도 없어요. 있다고 하면 윤보선 집 정도죠.” 일제강점기 때 대규모 주택 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서촌은 "북촌이 뜨니까 부동산 업자들이 '서촌도 있다'며 만들어낸 지명"이라고 한다.
종로 창성동에서 나고 자란 유 교수는 6·25전쟁 이후 천막교실에서 자란 경험 등 자전적 일화도 들려준다. 어린 시절 살았던 종로 적산가옥, 대학시절 지켜본 인사동 고서점 화랑거리, 쌈지길의 추억엔 진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망우리 공동묘지 사진을 보여주며 “감동적”이라고도 했다. “한용운, 이중섭, 박인환, 차중락 이런 분들 40명의 무덤이 남아 있죠. 작곡가 쇼팽이 있는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처럼, 무덤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있어서 찾아가는 거죠.”
그동안 언급을 피해온 '청와대 개방'에 대한 의견도 덧붙였다. 유 교수는 참여정부 문화재청장, 문재인 정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개방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선 준비를 하고 진행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이미 개방이 된 상황에서는 건축가 공모를 열어서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학자의 여정은 당분간 계속된다. “그간 쓰지 않은 곳을 다니며 답사기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연천 전곡리 선사시대 유적지를 돌고 독도에 가서 마지막 이야기를 끝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