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와 가위가 무기… 재단사는 폭력배 권총을 이겨낼 수 있을까

입력
2022.10.22 10:00
19면
넷플릭스 영화 '아웃핏'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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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가위질과 바느질로 살아온 듯하다. 1956년 미국 시카고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영국인 레너드(마크 라이런스)는 노쇠하고 연약해 보인다. 하필이면 그의 양복점은 아일랜드계 갱단이 연락사무소처럼 사용한다. 두목의 아들 리치(딜런 오브리언)와 핵심 조직원 프랜시스(조니 플린)가 수시로 양복점을 드나들며 상자에 돈봉투를 넣어둔다. 상자는 비밀스러운 문서를 주고받는 우편함 역할을 하기도 한다. 레너드는 내색하지 않지만 딸처럼 여기는 직원 메이블(조이 더치)이 리치와 사귄다는 점이 못마땅하다.

①어느 날 밤 벌어진 일

어느 날 저녁 레너드가 퇴근하려는데 리치와 프랜시스가 양복점으로 도망치듯 들어온다. 리치는 복부에 총상이 있다. 둘은 조직의 범죄 행각을 누군가 미연방수사국(FBI)에 흘리고 있는데, 밀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테이프를 확보했다고 말한다. 경찰이나 라이벌 범죄조직에 테이프가 넘어가면 안 된다.

리치와 프랜시스는 양복점에 숨어 있어야 하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 리치는 출혈이 심하고, 프랜시스는 두목이 위험에 처할 수 있으니 녹음기를 구해 테이프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섬세한 바느질 기술을 지닌 레너드에게 무리한 부탁을 할 수밖에. 레너드는 원치 않으나 조금씩 폭력 조직 사이 다툼에 끼어들게 된다.

②밀고자는 누구인가

리치가 안정을 되찾자 레너드는 여유를 얻는다. 한없이 약자처럼 보이나 레너드가 좀 수상하다. 그는 “청바지에 밀려” 런던을 떠나 시카고에 정착했다고 하나 과거를 알 수 없다. 런던에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던 듯한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은 ‘봉제를 하는 사람(Tailor)’이 아닌 ‘재단사(Cutter)’라고 수시로 주장하는 것도 수상쩍다.

리치와 프랜시스는 밀고자를 알고 싶어 하나 방식을 두고 서로 대립한다. 뭔 일인지 레너드는 싸움을 부추긴다. 레너드가 밀고자인 걸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③고전적 스릴러의 잔재미

이야기는 양복점이라는 좁은 장소에서만 서술된다. 작업실과 응접실 등 공간 구분이 돼 있으나 장소를 통한 볼거리는 거의 없다. 대신 인물 간의 심리 묘사, 정보량이 많은 대화 등을 통해 스릴을 만들어낸다.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스릴러다. 소품 같아도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재미의 8할 정도는 마크 라이런스 연기에 기댄다. ‘스파이 브릿지’(2015)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는 등 연극 무대와 영화를 오가며 호연을 펼쳤던 그의 진가가 발휘된다. 그는 겁먹은 재단사처럼 보이면서도 때로는 음흉한 음모를 꾸미는 인물처럼 보인다. 순한 듯하나 자기만의 계획이 있고, 어두운 과거를 지닌 예상 밖 인물이다. 무릎을 치게 하는 반전도 결국 라이런스가 맡은 레너드에서 비롯된다.

뷰+포인트
‘이미테이션 게임’(2015)으로 아카데미상 각색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 그레이엄 무어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작가가 만든 영화답게 시나리오가 촘촘하게 잘 짜여있다. 적절한 유머와 메시지가 담긴 대사를 만들어내는 솜씨 역시 눈에 띤다. 영화는 국내 극장에선 개봉하지 않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직행했다. 티빙과 웨이브에서도 볼 수 있으나 별도 요금을 내야 한다. ‘나이브스 아웃’(2019) 같은 영화를 즐기는 이들이 선호할 만한 작품이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5%, 관객 92% ***한국일보 권장지수: ★★★★(★ 5개 만점, ☆ 반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