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관광지를 산책하던 반려견이 갑자기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던 반려인은 동물병원의 상상을 뛰어넘은 진단 이후 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주 현지 매체 ABC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호주 서북부 항구도시 ‘브룸’(Broome) 해변가를 산책하던 반려견 ‘젠’(3∙보더콜리)이 갑자기 구토와 경련 증상을 보였습니다. 젠의 반려인 벤 헤너건(Ben Hannagan) 씨는 “반려견이 뒷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있었고, 막 쓰러질 것 같았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야외에서 산책을 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많은 이들이 독사에 물렸을 가능성을 의심합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지난달, 서울 망원동 한강공원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반려견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반려견이 주저앉아서 걷지도 못할 만큼 통증을 호소해 반려인이 병원으로 데려간 뒤에야 뱀에 물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헤너건 씨도 ‘젠이 뱀에 물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급히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젠을 데려갔습니다. 혈액검사 결과 젠의 몸에는 독성물질이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태는 여전히 심각했습니다. 수의사는 “독성물질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심박수와 체온은 치명적인 수준까지 상승해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
심각한 상황에 다급해진 헤너건 씨는 젠의 생존 가능성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수의사는 선뜻 ‘생존이 가능하다’고 답하지 않았습니다. 망설임 끝에 수의사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짧게 답했습니다.
전업 화가인 헤너건 씨는 4개월 전 호주 브리즈번에서 브룸으로 넘어왔습니다. 정신 건강을 지원하는 자선단체 ‘블랙 독 협회’(Black dog Institute)와 함께 100개의 벽화를 그리는 일을 하기 위해 여행을 오게 된 겁니다. 그는 “이번 일을 겪기까지 낯선 곳에서 젠이 잘 적응하도록 조심하고 있었기에 너무나 당황스러웠다”고 돌아봤습니다.
치료가 진행되던 중, 추가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의사로부터 검사 결과를 전해들은 헤너건 씨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변 채취가 늦어진 바람에 뒤늦게 확인된 물질은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소위 ‘필로폰’이라 불리는 마약 성분이었습니다.
수의사는 젠이 해변가에서 필로폰을 보고 삼킨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마약 탐지견이 아닌 보통 개들은 필로폰의 다른 냄새를 맡아낼 수는 있지만, 마약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호기심에 입에 가져가서 먹어볼 수 있다는 뜻이죠. 수의사는 헤너건 씨에게 “만약 마약 용량이 많았다면, 젠의 심장이 감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며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일은 브룸에서 가끔 발생한다고 합니다. 수의사는 헤너건 씨에게 “1년에 대략 5~6건 정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바닷가에서 벌어진 파티 이후 해변을 산책하던 개들이 모래에 버려진 마약을 잘못 먹고 병원에 온다는 얘기입니다.
다행히 적절한 조치를 받은 젠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물론 대가는 컸습니다. 젠의 치료비는 1,200호주달러(약 108만원)가 청구됐습니다. 그러나 헤너건 씨는 치료비 대신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간혹 벌어지는 사건이 내 반려견에게 발생해 유감이지만, 앞으로 산책할 때 이런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걸 꼭 염두에 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려견이 마약에 중독되는 사례도,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간혹 보고되곤 합니다. 2017년 영국에서는 반려견이 반려인을 물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망한 반려인의 이웃들은 “해당 개가 과거에는 반려인이 발작으로 쓰러졌다는 걸 이웃에게 알려 목숨을 구한 적도 있다”며 뭔가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해당 개의 소변을 검사해 본 결과 코카인과 모르핀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니콜라스 카마이클 수의학 박사는 “약물 때문에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스스로 마약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원인”이라고 짚었습니다.
2016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반려인이 8개월령에 불과한 자신의 반려견에게 필로폰을 투여하다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경찰은 이 개를 동물보호소에 보낸 뒤 4개월간 마약 중독 치료를 진행하게 했습니다. 마약 중독 치료를 마친 반려견은 새로운 가족을 찾아 행복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해프닝이나, 안타까운 사건 정도로 느껴지시나요? 그러나 이 일을 그냥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약사범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고, 마약류 유통 현황이 심상찮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닙니다. 국제연합(UN) 기준에 따르면 인구 10만명 당 마약사범이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합니다. 한국은 약 1만명 정도 이내로 마약사범이 검거돼야 마약 청정국이 될 수 있지만, 최근 5년간 마약사범 검거는 연평균 1만5,000여명 수준입니다.
또 다른 통계 역시 한국이 마약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내놓은 ‘하수역학기반 신종 불법 마약류 사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57개 하수처리장에서 불법 마약류가 검출됐다고 합니다. 그 양조차도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식약처가 하수처리장에 모인 마약 잔여물로 시중에 유통되는 마약량을 역산한 결과, 인구 1,300명당 1명 꼴로 매일 필로폰을 1회씩 투약하고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마약에 대한 심각성이 연이어 전해지자 경찰도 칼을 빼들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8월 취임 직후 ‘마약류 사범 소탕’을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7일, 경찰은 마약사범 2,121명을 검거하고 348명을 구속했다고 밝혔습니다. 윤 청장은 “마약류 범죄를 대상으로 한 사상 초유의 강력한 단속을 전개했다”고 강조하며 마약 근절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습니다.
불법 마약 유통이 늘어난 만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젠이 겪었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마약사범을 단속해 ‘마약 청정국’으로 돌아가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어딘가 버려진 마약이 반려견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반려인 여러분들의 경계심도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