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울고 싶어라"...일본 무역 적자폭 상반기 역대 최대

입력
2022.10.20 16:30
에너지값 급등에 엔저 현상까지 겹쳐
무역적자 11조 엔...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 거론도

일본의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가 11조 엔을 넘어섰다. 반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적자폭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는데, 여기에 유례없는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까지 겹치면서 일본의 수입액이 크게 증가한 탓이다.

광물성 원료 수입액 전년 2배 넘어... 전체 수입액의 30% 차지

일본 재무성이 20일 발표한 2022년도 상반기(올해 4∼9월) 무역수지는 11조75억 엔(약 105조4,900억 원)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1979년 이후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적자폭이다.

최대 적자의 원인은 에너지 가격 급등과 엔화 가치가 32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원유와 원자재를 많이 수입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입액 자체가 늘었다. 여기에 엔저 현상까지 겹치면서 일본이 실제 부담해야 하는 수입 가격은 더 부풀려졌다. 실제 이 기간 원유 수입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91.8%나 폭등하고, 연초 달러당 110엔대였던 엔화 가치가 최근 150엔에 육박할 정도로 떨어졌다.

상반기 수출액은 49조5,762억 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19.6% 증가했지만, 수입액 증가액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 기간 일본 수입액은 60조5,837억 엔으로 전년 대비 44.5% 증가했다.

무역적자 폭이 커지면서 일각에선 일본이 올해 42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30년 연속 대외순자산 1위 국가인 일본은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더라도 해외 자산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익이 워낙 많아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무역적자 규모가 너무 커서 이를 상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당 150엔 '심리적 저항선' 앞두고 개입 눈치 보기

엔저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이날 도쿄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9.9엔대를 기록하며 사흘째 149엔대를 이어갔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달러당 150엔을 돌파하면 일본 정부가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 시장 참가자들이 눈치 보기를 하는 양상이다.

앞서 지난달 22일 일본 당국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5엔을 넘자 24년 만에 처음으로 엔화 매수 개입을 단행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소비자물가나 경지 지표가 예상을 웃돌고 미국이 다음 달 초 금리를 또다시 0.75% 크게 인상할 것이 확실시되자 엔화 가치는 150엔에 육박하며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장에서는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돌파하면 정부와 일본은행이 다시 개입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지만, 효과가 일시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 달 1, 2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이 다시 한번 금리를 0.75%포인트 급격히 올릴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반면, 일본은행은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미국 금리 상승 여파로 일본 채권시장 금리가 상승하자, 일본은행은 10~20년물 국채 1,000억 엔(약 9,500억 원), 5~10년물 국채 1,000억 엔어치 매입했다. 일본은행은 올 들어 시장금리가 상승할 때마다 채권을 대규모로 매수하는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금리를 낮춰 왔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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