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스튜디오 만든 유경하 이화의료원장 "진료와 교육, 그게 우리 정체성"

입력
2022.10.20 19:00
23면
의료교육 특화 스튜디오 '이화의료아카데미'
VR 활용 교육과 자체 메디컬 콘텐츠 제작
"보구녀관의 정신을 이어가겠다"

"종합병원에 웬 가상현실(VR) 스튜디오냐고요? 변화된 시대에 맞춰 진료와 의료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죠."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서울병원에서 만난 유경하(62) 이화의료원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곧장 지하 2층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그곳엔 한창 각종 장비가 설치되고 있는 '이화의료아카데미'가 있었다.

약 300㎡ 넓이의 공간은 마치 방송국 스튜디오 같았다. 한쪽에는 독립된 방도 4개 있었는데 VR룸이었다. 유 원장은 중앙의 초대형 TV를 가리키며 "각각의 VR룸에서 학습자가 질환별로 중환자 시나리오를 선택해 3차원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며 "TV로 VR 체험 화면이 공유돼 다른 학습자들의 동시 교육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화의료원은 올해 '보구녀관(普救女館)' 설립 135주년을 맞아 VR 기술을 활용한 의료교육과 메디컬 콘텐츠 제작을 목표로 이화의료아카데미를 설계했다. 1887년 10월 설립된 보구녀관은 조선 최초의 근대식 여성 전용 병원이다.

메디컬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종합병원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VR 교육은 사실상 국내 병원 중 첫 시도다. 유 원장은 "실습과 연수 기회가 의사들보다 적은 간호사나 물리치료사 등에게도 수준 높은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며 "생명공학(BT),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밀집한 '마곡엠벨리' 및 공항과 가까워 국제교육과 학술교류의 장으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VR 교육이 의료 종사자에 초점을 맞췄다면 메디컬 콘텐츠는 의료 이용자를 위한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의료정보를 전문의가 직접 출연해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유 원장은 "요즘 환자들은 의료 관련 정보가 궁금하면 유튜브부터 찾아보는 게 현실"이라며 "전문의들이 병의 개요부터 증상, 치료 및 관리법 등을 알려주면 의료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의료원은 콘텐츠 제작을 위해 PD와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채용했다. 유 원장은 "일러스트레이터를 병원이 직접 뽑은 사례는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 교수들에게 콘텐츠에 대해 조사했더니 유방암과 창상(칼 등에 의한 상처) 관리법 추천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화의료아카데미 가동을 앞둔 유 원장은 "구성원들의 반응은 좋지만 일각에서는 '병원이 진료나 열심히 할 것이지 엉뚱한 데 신경 쓴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의료교육 및 콘텐츠 제작으로 병원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방향성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유 원장은 "보구녀관은 치료뿐 아니라 교육의 현장으로 국내 최초의 여의사와 간호사를 배출했다"며 "진료와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게 이화의료원의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유 원장은 학생들이 VR룸에서 의료 체험을 할 수 있는 '미니 메디컬 스쿨'도 구상 중이다. 그는 "의료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더 잘 알고 더욱 아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