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의 원류로 추앙받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무지에 대한 자각'으로 대표되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을 비롯한 지인들의 저술로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그의 생애와 관련해서도 주로 불경죄로 법정에 선 말년의 모습으로 각인돼 있다. 죽음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철학적 삶을 살았음에도 어떤 계기로 지적 탐구에 빠지게 됐는지 그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이 때문에 회화와 조소에 나타난 소크라테스는 늙고 못생긴 외모로 묘사돼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문화를 현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데 관심을 보여 온 아먼드 단거 영국 옥스퍼드대 고전학 부교수는 공백 상태로 남아 있는 소크라테스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에 주목했다. 신간 '사랑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여러 문헌과 학술 연구 등에서 찾아낸 소소한 사료와 저자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일궈낸 소크라테스의 전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에로스적 사랑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서민 가정에서 태어났고 젊을 적 연애에 대한 증거가 부족한 것으로 보아 젊었을 때 연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저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소크라테스가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강인하고 매력적인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석공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모자람 없이 충분한 교육을 받고 자랐고 전사로서 나라를 위해 몸으로 뛰었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는 당대에 가장 똑똑하고 흥미로운 여성 중 한 명인 밀레토스의 아스파시아에 대한 사랑이 계기가 돼 철학에 헌신하게 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관한 일을 내게 가르쳐준 분"이라며 디오티마라는 여성을 언급한다. 디오티마는 가상의 인물로 알려져 왔지만 저자는 당시 시대상 등을 근거로 소크라테스가 아스파시아를 디오티마에 투영한 것으로 추정했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 간의 동성애적 사랑도 거론된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았던 때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크세노폰은 전한다. 플라톤 역시 소크라테스가 자신은 "늘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했다고 기록한다. 두 사람 모두 소크라테스가 젊고 아름다운 알키비아데스를 사랑했다고 적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스스로를 전사, 레슬링 선수, 무용가, 그리고 열정적 연인으로 표현했다고 전한다. 요컨대 책은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영웅으로 변모시킨 젊은 시절의 경험을 재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비주류적 자료를 토대로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책이어서 저자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뛰어난 가독성으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고대 그리스 철학과 문화에 대한 심층적 독서로 안내하는 길잡이 책으로서는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