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위험 수준' 측정 됐는데... 장산리 집단 암 발병, 정부 "인근 공장과 인과관계 인정 안 돼" 결론 논란

입력
2022.10.21 04:30
10면
공장 들어선 후 37명 중 12명 집단 암
정부 주민건강영향조사 실시했으나 
수치 높은 조사 결과는 배척하고 결론
주민들 배상 길 막혀... 전문가들 비판

전선·필름 공장 오염물질 배출로 인한 집단 암 발생 등을 호소해 온 충남 천안 장산5리의 주민건강영향조사에서 대기 중 일부 발암물질 농도가 위험 수준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부는 이 결과를 배척하고, 공장에 미리 알리고 공장가동률이 낮은 시간에 측정한 수치만을 채택해 ‘오염과 질환의 인과성을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피해 지역 주민들은 기업 등으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혔다.

20일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이 입수한 ‘천안 장산리 일부지역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실태조사’(국립환경과학원 주관)에 따르면 금강유역환경청(이하 금강청)이 지난 3월 측정한 장산5리의 대기 중 오염물질 농도를 연구진이 분석한 결과, 포름알데히드 등 6가지 물질의 농도가 ‘발암위해 있음’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금강청의 측정 자료를 ‘건강영향평가의 기초자료나 행정처분의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기오염이동측정차량을 이용한 조사라 건강영향조사에 사용되는 공정시험법과 차이가 있다는 이유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차량이동 측정장비는 산단 지역에서 상대적인 고농도 지점이나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감시장비”라며 “원래는 이용하면 안 되는 자료인데 연구진이 참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이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억 원에 달하는 공적 장비로 측정한 농도의 의미를 정부가 스스로 격하한다는 것이다.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학장 겸 보건대학원장은 “금강청 자료는 공적 기관에서 표준화된 분석 방법을 지켜서 측정한 것인데 이 자체를 행정처분의 근거로 쓸 수 없다는 말은 근거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의 책임연구진인 노상철 단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도 “측정 방식이 다르긴 해도 금강청이 측정한 농도도 하나의 추세로 보고 분석할 만하다고 판단해 조사 결과에 넣었다”며 “공정시험법을 따른 본조사도 정확하다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양한 분석이 필요한데, 오히려 환경부와 과학원으로부터 ‘잘못된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채택한 본조사 방식의 경우, 오히려 주민들의 반발을 불렀다. 주민들은 “공장 배출구 조사가 낮 시간에 짧게 이루어졌고, 조사를 하겠다고 미리 알리고 오기 때문에 공장가동률을 낮추거나 독성물질 투입을 줄일 수 있다”며 보완 조사를 요구해서, 금강청의 조사가 추가로 이뤄졌다. 그런데 정부가 금강청의 추가 조사결과를 배척한 것이다.

본조사와 금강청의 추가 조사는 결과에 큰 차이가 있었다. 본조사에서 농도가 낮아 발암위해가 낮은 것으로 분석됐던 물질들이 금강청 자료에서는 위해도가 상당할 정도의 높은 농도로 측정됐다.


포름알데히드의 경우 본조사에서는 100만 명 중 37명 정도의 암 발생 위험도, 즉 ‘발암위해를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님’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암 발생의 경우 100만 명 중 1명 이하여야 위해성이 거의 없다고 분석된다. 반면 금강청의 측정값은 10만 명 중 38명 정도의 상당한 암 발생 위해성이 있는 수준이었다. 포름알데히드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이다.

역시 IARC 지정 1군 발암물질이자 심혈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트리클로로에틸렌도 본조사에서는 위해성이 1,000만 명 중 35명 수준으로 낮았지만, 금강청 측정값을 분석한 위해도는 1만 명당 2명 수준으로 높아졌다. 금강청 조사에서는 IARC가 2B군(세 번째로 높은 등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프로필렌옥사이드도 측정됐지만 본조사에서는 측정되지 않았다.

금강청의 조사를 배척한 정부도 본조사의 한계는 인정하고 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전선공장 배출구 측정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알루미늄의 수입이 중단되는 등 생산량이 줄어 정상적인 가동으로 볼 수 없고 배기가스 농도분석에서도 한계가 있었다”, “필름공장의 경우도 과거보다 생산량이 50% 이상 감소하여 배출구에서의 오염물질 측정에 한계가 있었다”고 언급됐다. 조사 직전인 2019년부터 두 공장에 방진장치가 갖춰진 것도 과거 노출 실태를 추정하기엔 걸림돌이다.

결국,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은 “일부 오염물질의 노출 수준이 상당하지만 환경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며 “주민들의 질환도 건강 피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집단적으로 발생하진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장산5리 주민건강영향조사는 2020년 11월 시작됐다. 마을 인근 공장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돼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주민들이 조사를 청원했기 때문이다.(▶클릭이 되지 않으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81921010003640로 검색)

주민들이 지목한 오염원은 주거지에서 300~500m 이내에 있는 전선, 필름 제조공장으로 각각 1997년, 2004년에 들어섰다. 주민들은 37명 중 12명이 암에 걸렸고(사망 4명 포함), 갑상선·폐질환 등을 앓는 경우도 10여 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사에서는 질병에 걸린 주민 수도 축소됐다. 주민들이 주장한 암 사망자 4명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암 등록 자료가 없어 빠졌다. 2020~2021년 사이 암 진단을 받은 주민 3명의 경우 근거자료는 있으나, 암 발생률 비교데이터인 국가암등록통계가 2019년까지밖에 없어 연구에서 배제됐다. 그나마 수술확인서 등을 통해 2명의 암 발생이 추가로 확인돼 분석대상 암 환자는 7명이 됐다.

익산 장점마을 주민건강영향조사를 맡았던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은 “장산5리처럼 주민 수가 적은 곳은 환자 한 명이 포함되느냐 마느냐가 통계적 유의성 판단에 큰 부분”이라며 “최근 암 진단을 받은 주민이 확인된 상황에서 이들을 제외한 채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조사를 마무리하고 사후관리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해당 공장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사업장인 만큼 앞으로 충청남도나 천안시에서 오염측정 등 환경관리에 더 신경을 쓸 것”이라며 “주민 건강도 더 나빠지지 않는지를 관리할 것”이라 말했다. 환경부는 지자체에 약 1억5,000만 원의 국고보조금을 교부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건강영향조사로는 '연관성은 제한적'이라는 결론만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질병 발생의 원인과 과정이 복합적인데,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 1, 2년의 조사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노상철 단국대 교수는 “주민들이 지난 20년간 겪은 오염 노출을 현재 시점에서 뒤늦게 추정해 분석하려면 2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며 “더 장기간의 추적조사와 추가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표된 청주 북이면 소각장 건강영향조사에서도 같은 한계가 드러났다. 정부는 소각장과의 역학적 관련성을 명확히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연구진은 보고서를 통해 "본조사에서 과거 노출 자료의 부재, 짧은 암 발생 추적기간 등의 이유로 소각장과 암 발생과의 관련성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임종한 인하대 교수는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된 건 이 지역이 고농도의 발암물질에 노출돼 상당한 건강 위협을 받고 있는 건 틀림이 없다는 점”이라며 “환경부가 평소에 충분히 위험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인 만큼 유의미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