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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최근 대면 수업 전환으로 낯선 캠퍼스 생활을 하게 된 '코로나 학번' 20대 페미니스트 여성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부 생활을 최소화할 때는 주로 집에서 생활했어요. 친한 친구들과는 스마트폰으로 소통했고, 온라인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세상을 바라보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죠.
요즘 저의 최대 고민은 통학을 하며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남성들에게 혐오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우, 통학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남자들, 심지어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는 남동생까지 말이죠.
제가 화가 나는 순간을 꼽자면 이렇습니다. 수업 중 질의응답 시간, 핵심만 묻질 않고 주변 시선은 아랑곳 않은 채 온갖 지식을 동원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학생은 왜 꼭 남성일까요. 지하철에서 옆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쩍벌을 한 사람도 그렇고요. 하다못해 집안일은 손도 대지 않고 침대에 누워 있는 제 남동생은 어떻고요. 남성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 같습니다.
사사건건 무례하거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남성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모든 남성에 대한 혐오 감정이 야금야금 생겨납니다. 분을 삭이지 못할 때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남성을 싸잡아 욕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처럼 남성이 가해자인 여성 대상 범죄를 볼 때면 "여자들끼리만 모여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남혐(남성혐오자)'인 걸까요. (최영희·가명·21·학생)
A. 영희님,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시기를 겪으며 우리 모두의 삶은 무척 많이 바뀌었습니다. 성별, 나이, 배경 등 요소가 이질적인 사람들과 살 맞대며 마주칠 일도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졌죠.
코로나19와 대선 등 굵직한 선거를 거치며 온라인상 성별 간 대립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상황입니다. 지난 4월 발표된 한국리서치 정기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젠더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71%로, 1년 전에 비해 8%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이런 인식은 20대 응답자에서 도드라져요. 같은 조사에서 20대 응답자의 90%가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어요.
향후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응답자들은 앞으로도 젠더갈등이 지금과 비슷하거나(52%), 더 심각해질 것(27%)이라 봤어요. 그중 20대 여성(62%)이 앞으로 전망을 가장 비관적으로 봤고요. 여론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20대 내 성별 간 대립이 실재하는 '현상'인 만큼 영희님처럼 일상생활에서 다른 성별에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제가 남혐일까요"라는 영희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최근 남용되고 있는 단어 '혐오'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도록 해요.
지난해 "GS25 편의점 포스터 속 집게손가락 '남혐 논란'" 같은 기사가 범람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남혐 혹은 남성혐오'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생경한 단어가 아닙니다. '성별+혐오'라는 조어로 인해 남성혐오는 '여성혐오'의 대립항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사실 내포하는 개념과 성질은 무척 다릅니다.
'여성혐오(misogyny)'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한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성에 대한 유구한 차별과 증오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표현하는 학술 용어이자 개념어인 거죠. 예를 들어 며느리에 대한 시집살이,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미디어 속에서 수동적이고 제한적으로 재현되는 여성 등이 모두 '여성혐오'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치·경제 등 많은 영역에서 배제하는 성차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남성을 싫어한다'라는 뜻으로 남용되는 '남성혐오'라는 단어는 이러한 학술적 용어 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일부는 남성혐오라 번역되는 영어권 단어 '미샌드리(misandry)'를 들어 '미소지니(misogyny)'의 대립항으로 설명하곤 하지만, 국내외 사이트에서 검색해봤을 때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만 언급되는 희귀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학술 검색은 말할 것도 없고요.
Q. 그러니까 '남성이라고 해서' 차별을 당하고, 묻지마 폭력을 당하는 등 사회 내 성차별 구조가 실존하지 않는 한 '남성혐오'라는 것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네요. 제가 남성을 싫어하는 마음은 학술 개념으로의 '혐오'라기보다 호불호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상어 '혐오'인 거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남성을 싫어하는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현명할지에 대해서는 답을 얻지 못했어요. 평생 남성들과 분리돼 살 수도 없잖아요. 여전히 학교에서, 공공장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SNS에서 인구의 절반인 남성을 마주치는데 계속해서 특정 성별에 대한 편견이 강화돼 일상생활이 부정적 기운으로 물들고 맙니다.
A.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게다가 일상 속에서 수없이 만나는 남성들을 볼 때마다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어쩌면 가장 먼저 지치는 것은 영희님일지도 몰라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젠더 권력을 휘두르거나 폭력적인 사람을 봤을 때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잘못을 행하는 개인의 여러 요소를 간과하고 '남성'으로만 낙인찍는 것 역시 일종의 성별 고정 관념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물론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은 비교적 행동의 제약이 없고 분방하나, 모든 행동을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틀로 분석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대표적인 페미니즘 사상가 벨 훅스의 저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해제에서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자는 페미니스트인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고 한다.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자를 반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 여성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벨 훅스는 같은 책에서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지배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며 젠더 차별을 근절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투쟁"이라 말하는데요. 과연 모든 남성을 싫어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성차별 철폐와 여성 해방에 큰 도움이 될까요. 책의 한 문장을 인용하며 영희님의 고민 상담을 마무리할게요.
※ 참고 자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2017),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페미니즘(2022), 데버라 캐머런 지음, 강경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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