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길에 운동기구·등산객이... 만들어놓고 90%는 안 들여다보는 생태통로

입력
2022.10.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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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생태통로 30%는 관리대장 없거나 미흡
일반 생태통로는 방치되는 경우 많아
"예산 편성해 현행 관리 감독 제도 바꿔야"

인간 때문에 단절된 야생동물 생태계를 그나마 이어주는 생태통로가 1998년 이후 전국에 500곳 넘게 설치됐지만, 관리 부족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간 편의대로 구조물을 설치하고 활용하면서, 정작 동물 찻길 사고(로드킬)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9일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총 540곳에 달한다. 자연환경보전법에 의해 설치·관리되는 법정 생태통로는 53곳, 그 외 환경영향평가법에 의해 설치된 일반 생태통로는 487곳이다.

법정 생태통로의 경우 정부가 직접 설치하는 데다 관리 의무가 법에 명시돼 있어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다. 그러나 지자체나 도로관리사무소 등이 관리를 넘겨받은 곳은 기본적인 모니터링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정 생태통로 53개소 중 13곳은 관리대장이 아예 작성되지 않았고, 3곳은 작성 내용이 미흡했다. 특히 관리대장이 작성되지 않은 충남 아산시의 한 생태통로의 경우 2019~2021년 반경 1㎞ 내 로드킬이 무려 28건이나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2019년 국립생태원이 49개 법정 생태통로를 대상으로 효율성을 평가한 결과, 약 20%만 '양호' 판정을 받았다. 전체 구조물 폭이 40m에 달하지만 실제 야생동물이 이용 가능한 폭은 3m 안팎에 불과한 충남 천안시의 한 생태통로에는 사람이 다니는 보행자 계단이 설치됐다. 결국 생태통로 조성에 공사비 28억 원이 투입됐지만, 사람의 왕래가 잦아 실제 야생동물의 이용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일반 생태통로는 더 열악하다. 산을 깎아내 아파트를 짓거나 새로운 도로를 놓을 때 건설사가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생태통로를 만들지만, '이름만 생태통로'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로 위 육교 형태로 설치됐지만 나무 등 식생이 아예 없는 경우 △유도 울타리가 통로를 따라가도록 설치되지 않아 동물 로드킬을 막기 어려운 경우 △생태통로에 운동기구를 설치하거나 아예 등산로를 조성해 동물이 아닌 사람이 이용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생태통로가 제 기능을 못하면 동물의 로드킬 위험이 커진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도로가 생기면서 동물 서식지가 파편화되거나 단절되고, 넓은 서식지가 필요한 동물종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도로를 횡단하게 된다"며 "생태통로는 로드킬 방지뿐 아니라 생태계 보전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 부재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생태통로 관련 자문을 하는 전문가 A박사는 "건설사가 설치한 생태통로가 규정에 맞게 만들어졌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보통 그대로 준공처리되면서 개선의 여지가 없어진다"며 "지자체 등에 관리 업무가 이관된 뒤엔 매년 담당자가 바뀌거나 전문성 없는 공무원이 관리를 맡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A박사는 "예산을 편성해 모니터링 장비를 설치하고, 야생동물조사 관련 업체가 매년 점검하도록 하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대수 의원은 "생태통로는 도로로 단절된 생태축을 복원해 로드킬로 인한 야생동물과 운전자의 사고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필수적이지만, 생태통로의 90%인 일반 생태통로는 관리 의무가 없고 나머지 법정 생태통로의 30%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며 "환경부는 생태통로가 제대로 설치·관리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하고 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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