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노벨상의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도 오래전부터 기대했던 한국인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인은 왜 노벨상을 그렇게 기대하는 걸까? 노벨상 타는 게 무슨 의미일까? 사실 올림픽 금메달과 마찬가지로 노벨상은 나라에 주는 상이 아니라 개인에게 주는 상이다. 그리고 냉정히 말하자면 올해 한국 국적을 가진 분이 노벨상을 어느 분야에선가 딴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 그리 큰 의미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국격이 올라가는 것도, 한국의 학문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상에 대한 국가적 열광은 수상 이후 잠시 뜨거워졌다가 오래지 않아 식을 것이다.
사실 국내외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학자는 적지 않다. 또한 세계적인 학자가 아니더라도 잠재적 노벨상 수상자라고 할 수 있는 많은 직업학자들이 운동선수들이 신체를 수련하듯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직업학자들은 어떤 사람일까? 대부분의 직업학자들은 어려서부터 공부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인간인지라 본인들이 학문의 영역에서 서로 다투며 남보다 잘났음을 증명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연구주제의 중복과 연구 결과가 나오는 시점에 따른 패자들이 생긴다. 사실 지금도 소수 승자에 대한 보상은 모자라지 않을 수 있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패배를 경험했던, 하지만 승자에 비해 크게 뒤진다고 볼 수 없는 패자들의 좌절을 극복시키고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여유와 배려인지도 모른다.
연구에는 자금이 필요하므로 당연히 이런 문제들도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 국가 수준에서 연구비 규모는 적정한가? 우리는 학문의 발전이 장기적인 국가 발전의 근간임을 믿고 있는가? 학문 분야별 배분은 적정한가? 승리한 학문 분야에만, 업적이 쉽게 나오는 분야에만 지원이 집중되는 것은 아닌가? 5,000억 원짜리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좋은 건가, 아니면 50억 원짜리 100개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더 좋은가? 아니면 더 잘게 쪼개는 게 좋은가? 어쩌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마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제한된 지식과 정보 속에서도 우리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찾아 나가야 한다.
노벨상 대망론은 학문의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지극히 원론적 이야기지만 더 많은 기회가 도전적 젊은 학자들에게 주어져야 하고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도록 젊은 학자들을 격려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 명의 천재에게 열광하는 분위기로는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
사회적으로는 '공부하고 생각하는 분위기'라는 무형자산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나라에 바람직한 학자 공동체가 제대로 형성되어야 한다. 한국에 노벨상이 아직 없는 이유를 단 하나 찾으라면 아마도 학자 공동체가 제대로 서지 않았던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한눈 안 팔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면서 공동으로 노력하는 공동체, 전문성이 진정으로 존중되는 공동체. 그러한 학자 공동체가 잘 작동할 때 노벨상을 받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그런 학자 공동체가 있고 사회적으로 존중받는다면, 공부하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학문 후속세대들이 학문의 세계를 존중할 것이며 그들이 더 나은 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있으나 없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