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화력발전소는 어떻게 '녹색기업' 인증을 받았을까?

입력
2022.10.19 04:30
17면
녹색기업 인증에 탄소배출량 점수 미미
환경개선 실적보다 교육 등 '노력'에 방점
인증받으면 환경 관련 검사 등 면제 많아
이행평가 안해..인증받고 오염물질 조작도
"정성평가 횡행, 유명무실한 인증으로 전락"

[그린워싱탐정]<11>녹색기업 인증

편집자주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번 연재합니다.


지난해 12월 강원도 원주지방환경청에서는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그 해 녹색기업 지정 심사를 통과한 한 기업에 신규 지정서를 주는 수여식이다. 이창흠 당시 청장이 직접 경영진들에게 “녹색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달라”며 당부하는 자리였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사업장 특성상 환경이 잘 관리’됐다는 의견을 받은 이 녹색기업은 한국동서발전 동해바이오발전본부. 발전설비용량 449.2MW 중 90%가 유·무연탄 발전으로 이루어진 석탄화력발전소다.

2020년 이 발전소 한곳에서 배출된 온실가스는 193만3,788톤CO₂eq로 정유사인 SK인천석유화학의 배출량(158만4,513톤CO₂eq)을 훌쩍 뛰어넘는다.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면 결코 친환경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다. CO₂eq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이산화질소 등 여러 온실가스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한 '탄소환산량'을 뜻한다.

하지만 심사과정에 관여한 관할 지자체는 물론 한국환경공단, 강원녹색환경지원센터 등도 이에 대한 별도 의견 없이 지정을 용인했다. 환경부는 “오염물질의 현저한 감소 및 녹색경영체계 구축을 통해 환경개선에 크게 이바지하는 기업”이 녹색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석탄발전소는 어떻게 녹색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정부의 녹색기업 평가에 온실가스 배출량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배출 감축량은 거의 감안 안 해

지난해 12월 기준 녹색기업으로 지정된 기업은 115곳이며 이 중 화력발전소는 8곳이다. 한국서부발전 서인천발전본부를 포함해 총 7곳이 액화천연가스(LNG) 중심의 복합화력발전소다. 가장 최근에 지정된 동해바이오발전본부는 유일한 석탄발전소다. 이곳은 2001년 처음 지정된 뒤 2017년 비산먼지와 관련한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으로 벌금을 받고 자격이 박탈됐지만, 최근 재지정됐다.

석탄발전소는 잘 알려진 기후위기의 주범이지만, LNG발전소 역시 만만치 않다. LNG발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석탄발전의 60~70%에 달하기 때문이다. LNG를 시추해 액화·운송하는 등의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80배 강한 메탄이 누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색기업 평가기준에는 이 같은 사실이 반영되기 어렵다. 대기업이 녹색기업으로 지정되려면 녹색경영활동(500점)과 녹색경영성과평가(200점)를 합해 총 700점 만점 중 56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중 온실가스 배출량의 ‘기준연도 대비 최근 1년간 개선율’의 배점은 단 15점에 불과하다. 배출량을 줄이지 않아 이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녹색기업 지정에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아예 온실가스 배출량 개선 평가 항목이 없다.

녹색기업 예비평가시 확인하는 최근 1년간의 배출농도 강화기준 준수 여부에도 온실가스 감축량은 빠져 있다. 먼지·황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이나 수질분야 일부 항목만이 주된 평가요소다.

평가체계가 환경개선 실적보다는 ‘노력’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도 문제다. 환경부 관계자는 “녹색기업을 지정할 때는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대기·수질오염물질, 토양오염 및 소음 등 여러 측면에서 녹색경영 시스템이 구축됐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즉 사내 녹색환경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거나 녹색경영 추진 전담조직을 구성하는 등의 정성적인 요인이 평가를 좌우하는 것이다. 환경부의 설명대로 “석탄을 많이 태우는 발전소라도 다른 부분에서 가점이 있어 지정이 된 것”일지라도 환경오염 개선효과는 크지 않은 이유다.

녹색기업 지정 후 탄소배출량 늘었다?

이렇다 보니 화력발전소 상당수가 녹색기업 지정 전후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었다. 한국중부발전 제주발전본부는 2019년 4월 지정됐는데, 지정 직전인 2018년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3만2,102톤CO₂eq로 전년 대비 18.1%나 늘었고, 지정 직후인 2019년에는 65만173톤CO₂eq로 22.2%나 증가했다.


2019년 3월 지정된 한국남동발전 분당발전본부는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109만181톤CO₂eq)을 전년 대비 3.4% 줄였다. 하지만 지정 첫해인 2019년엔 배출량(125만4,517톤CO₂eq)이 다시 15.1%가 늘었다.

그나마 2020년 배출량은 120만4,891톤CO₂eq로 전년 대비 4% 감소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이 전년보다 8% 감소된 것으로 추정했으므로, 평균적인 자연감축분보다도 적다.

석탄발전소인 한국동서발전 동해발전본부의 경우 녹색기업 지정 1년 전인 2020년의 온실가스 배출(197만3,788톤CO₂eq)을 15.8% 줄였다. 이렇게 보면 환경개선에 기여한 듯 보이지만, 착시현상일 수 있다. 2019년 배출량이 234만5,000톤으로 전년보다 19.9% 증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동해발전본부의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년 전인 2018년 배출량(195만6,300톤)보다 늘었다.

인증받으면 환경 관련 보고·검사 다수 면제

녹색기업으로 지정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인 상황에서, 우선 기업 이미지 홍보 효과가 있다. 환경부 측은 “녹색기업으로 지정되면 이 사업장이 오염 관리를 잘하고 환경관련 법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기업이라는 브랜드 가치 측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화력발전소를 녹색기업으로 지정하는 것 자체가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고 지적한다. 조규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녹색기업 지정을 통해 석탄 및 LNG발전소에 친환경 발전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화력발전의 수명 연장 논리로 이용되는 등 재생에너지 전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녹색기업 지정으로 기업의 환경책임이 완화되는 건 큰 이점이다. 녹색기업은 지정 후 3년간 대기환경보전법과 물환경보전법상의 허가사항을 신고로 대신할 수 있다. 신규 배출시설을 설치해도 신고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아가 폐기물 및 화학물질 관리, 악취방지, 토양환경 보전 등 환경관련 11개 법률상 일부 항목에 대한 보고·검사도 면제받는다. 기업들이 너나없이 녹색기업 심사를 받는 이유다.

이 같은 혜택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오염감축에 노력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약 7년간 녹색기업의 환경법규 위반 사례가 142건(108개 사업장)에 달했다.


이 중 지정 취소가 된 사업장도 27곳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환경부의 대기배출원관리시스템에 총 145부의 조작된 자가측정자료를 입력하고 이 과정에서 배출량 측정대행업체와 공모한 사실이 드러나 지난 2월 녹색기업 지정이 취소됐다. 2019~2020년에는 LG화학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여수1공장 등 여수산업단지 내 대기업 사업장 4곳이 측정업체와 짜고 대기오염물질을 조작해 자격을 잃었다.

계획이행 평가조차 없애… "거의 100% 통과"

녹색기업 제도가 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통로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녹색기업 지정 심사는 각 지방환경청이 주관하는데, 지역 경제상황 등을 이유로 봐주기식 평가도 만연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녹색기업 중엔 대기업이 많다 보니 재지정 심사를 할 때도 정량평가를 임의로 정성평가로 변경하는 등 온정주의가 작용하고, 심사 통과율도 거의 100%에 달한다"며 "반면 기업은 심사가 끝나면 녹색경영 예산이나 환경기술인력을 축소하기도 해 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9년 녹색기업(당시 환경친화기업) 지정제도 운영규정이 개정되며 ‘환경개선계획 이행상황 평가’ 의무가 빠진 것도 도덕적 해이의 이유로 지목된다. 녹색기업이 매년 환경개선 실적 및 향후 이행계획을 관할 환경청에 제출하는 모니터링 제도인데,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기업들이 ‘말로만 녹색경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녹색기업 지정 기준 등이 소비자들의 눈높이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그린워싱 여부를 걸러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며 “국제적인 ESG 관련 정보공시제도 등을 참고해 제도를 내실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