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은 잠깐, 다시 카톡 세상 속으로"... 하루를 못 넘긴 '카톡 해방' 일지

입력
2022.10.1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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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업무·일상 의존도 커 탈퇴 꺼려
"해방감 느꼈다"... '디지털 디톡스' 자성도

#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카오톡’ 알림에 지쳤던 직장인 윤모(32)씨. 15일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톡이 장시간 먹통 되자 홧김에 탈퇴했다. 다른 메신저로 업무용 대화방도 만들어져 카톡과의 이별을 자신했다. 굳은 결심은 한나절을 넘기지 못했다. 카톡 기능이 복구되자 “빨리 재가입하라”는 지인들의 원성이 빗발쳤고, 결정적으로 상사가 다시 업무용 소통 수단으로 카톡을 쓰겠다고 선언한 탓이다.

카톡 없는 현실을 맞닥뜨린 한국인들에게 여러 감정이 오간 하루였다. 일상은 마비됐고 시민들은 온라인 공간이 다시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드물게 이참에 ‘디지털 디톡스(디지털 기기 중독 해독)’를 선언하며 탈퇴한 이도 있었지만, 대개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그만큼 디지털 세상에 예속돼 있다는 증거다.

먹통 사태로 특히 카톡 의존도가 높은 직장인과 젊은 세대의 불안지수는 극에 달했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손모(37)씨는 16일 업무용 메신저를 텔레그램으로 옮기자고 부서장에게 제안했다. 부서장은 난색을 표했다. 각종 자료 등이 대화방에 남아 있는 데다, 전 부서원이 메신저를 갈아 타는 게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손씨는 “카톡이 이미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어 변화를 계획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강모(33)씨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카톡은 각종 스터디 공간을 제공하는 필수 의사소통 수단이다. 강씨는 “공부와 관련된 모든 프로세스가 카톡으로 이뤄져 탈퇴는 생각지도 않았다”고 했다. 손해를 감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발적 ‘단절’이 아닌 시장 지배자의 ‘안정’을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의도치 않은 잠깐의 ‘해방감’은 탈(脫)디지털의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직장인 조모(36)씨는 주말 모처럼 업무에서 벗어났다. 그는 “외국계 회사라 회의가 일요일에도 갑자기 열릴 때가 많은데, 연락 자체가 안 되니 족쇄를 푼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김모(35)씨는 앞으로 남자친구와 휴대폰 없는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이날도 만날 시간과 장소만 미리 정한 뒤 안산 자락길을 함께 걸었다. 김씨는 “집 앞에 찾아가 친구 이름을 부르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면서 “잠깐의 멈춤도 때론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카톡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감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직장인 김모(29)씨는 카톡 중독자다. 계속 먹통인 줄 알면서 애플리케이션(앱)을 몇 번이나 열고 닫았다. 결국 화가 나 앱을 지워버렸지만, 복구 소식에 곧장 앱을 설치했다. 김씨는 “대화 내용이 다 사라져 후회하고 있다. 확실한 대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카톡 중독을 치료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카톡 대란으로 의존도에 따라 불안감과 해방감이 교차했을 것”이라며 “일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조화롭게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도형 기자
김재현 기자
나주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