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출산을 한 달 앞두고 회사에 연차를 소진할 수 있는지 물었다. "안 된다"고 한 회사는 돌연 다음 번 면담 때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며 권고사직을 유도했다. 응하지 않자 회사는 자금난을 이유로 A씨를 해고했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출산휴가, 4명은 육아휴직을 여전히 마음 편히 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치 주기부터 휴직 반려, 복귀 시 불이익 등을 당하거나 A씨처럼 해고되는 후폭풍이 두려워서다. 어렵사리 고용당국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도 기소나 과태료 부과 등 처벌로 이어지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33.7%는 출산 전후휴가(출산휴가)를, 41.8%는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16일 밝혔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도입된 지 각각 70년, 35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제도 활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저임금 노동자 등은 두 제도를 제대로 이용 못한다는 응답률이 절반을 넘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뒤 불이익에 대해서는 △복직할 수 없다(13.2%) △해고, 징계, 승진, 직장 내 괴롭힘을 겪어야 한다(7.6%)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10명 중 2명은 불이익을 받는다는 얘기다.
직장인 B씨는 "육아휴직 뒤 복직한 날부터 수개월간 야근을 하지 않으면 끝낼 수 없는 업무량이 배정돼 육아와 병행을 위해서는 주말에 12시간씩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상사에게 '타 부서에서 너에 대한 불만이 많다. 태도를 똑바로 해라. 업무를 이렇게 엉망으로 하는 건 니가 처음이다' 등 모욕적 발언까지 공개적으로 들어야했다"고 토로했다.
직장갑질119는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소극적 처벌'을 꼽았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3년 6개월간 임신·출산·육아 관련 4대 법(출산휴가, 육아휴직, 해고 금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위반 관련 신고는 1,385건인데, 이 중 121건(8.7%)만 기소되거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특히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상 적발 시 기소해야 하는 출산휴가 보장 위반의 경우 시정만 지시한 게 9건이나 됐다.
직장갑질119는 "신고 중 82.3%는 신고 의사 없음, 각하 등 '기타종결' 처분됐다"면서 "신고 대상이 사업주임을 고려하면 허위 신고가 많다기보다 신고 자체가 어렵고 신고 후에도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현실이 이러니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낮아 설문조사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불리한 처우 신고 시 제대로 처리될 것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43.3%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상운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임신, 출산, 육아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에서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사회적 분위기, 조직 내 상황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며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고, 신고 건수 자체가 적은 점을 고려했을 때 고용부는 적극적 근로감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