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14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처리와 관련해 20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하면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을 정조준하고 있음이 재확인됐다. 감사원은 앞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요청하면서 ‘정치 중립성’ 논란을 일으켰지만, 정작 수사 요청 대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을 제외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그럼에도 감사원의 최종 감사 결과나 검찰 수사 발표의 최종 목적지는 문 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감사원이 작성한 18쪽짜리 수사 요청 자료에서 문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대목은 세 군데다. ①청와대 국가안보실 국가위기센터가 22일 18시 36분 서면보고로 실종된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서면보고를 청와대 내부보고망을 통해 문 전 대통령에게 상신했고, ②23일 8시 30분 안보실장과 비서실장이 이씨의 피살·소각 정황을 문 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정확한 사실 확인이 우선이다. 북측에도 확인을 하도록 하라. 국민들께 사실 그대로 알려야 된다"고 지시했다.
안보실이 북한군에 의한 이씨의 피살·소각을 인지한 시점은 22일 22시(국가정보원 보고)와 22시 30분(국방부 보고)으로 ①과 ② 사이다. 감사원은 23일 1시 관계장관회의 후인 5시 안보실이 작성한 안보일일상황보고서에 피살·소각 내용이 없는 것을 '은폐'라고 지적했다. 안보실 보고서에 피살·소각 내용이 제외됐더라도 8시 30분 안보실장 등이 문 전 대통령에게 관련 정황을 대면보고한 것은 확인된 셈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③문 전 대통령은 27일 15시쯤 주재한 관계장관회의에서 시신 소각에 대해 국방부가 재분석해 규명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 회의 참석자 진술 등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국방부가 시신 소각과 관련하여 (24일) 발표한 내용이 너무 단정적이었다"고 언급했다. 문 전 대통령의 지시 후 국방부 등에서 내부적으로는 "시신이 소각됐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적으로 "소각 여부가 불확실하다" 등 유보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감사원은 보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대통령 지시의 맥락을 파악하려면 그전에 국방부가 무엇을 보고했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윤 의원은 "국방부 발표 하루 뒤인 25일 북한의 대남통지문을 통해 '시신은 안 태웠고 부유물만 태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고자 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감사원 발표만으로는 문 전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인해 국방부의 대외적 입장이 바뀐 것으로 오독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과 관련해) 전체 맥락을 제거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한 부분도 많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에선 감사원이 검찰에 문 전 대통령을 겨누도록 좌표를 찍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 측에 서면조사를 요구한 이유는 이러한 대목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의 거부로 조사는 불발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위법한 지시를 한 사항을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대통령에게 서면보고가 이뤄졌다고 돼 있지만 읽었는지 여부나 직접 보고받았는지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상신된 서면보고를 실제 수신해 읽었는지, 첫 대면보고에서 어느 수준까지 보고받았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세 번째 대목은 향후 검찰 수사에서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수사 요청 대상에 포함해 정치 중립성 논란을 증폭시키기보다 사실상 검찰의 손을 빌린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감사원이 최종 감사 결과에 문 전 대통령의 연루 정황을 포함하거나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겨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