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심야에 동·서·남 동시도발…9·19 군사합의 노골적 무시

입력
2022.10.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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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13일 심야부터 14일 새벽까지
군용기·SRBM·방사포 사격 도발 감행

북한이 2018년 맺은 9·19 군사합의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13일 야간부터 14일 새벽까지 동서해에 포탄을 퍼붓고, 탄도미사일을 쏘고, 군사분계선(MDL) 가까이 전투기를 띄웠다. 북쪽을 제외한 사방을 노린 이례적 동시다발 도발이다. 정부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며 경거망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北, 심야 동시다발 양동 작전

합동참모본부는 14일 "북한이 전날 오후 10시 30분쯤부터 이날 오전 0시 20분 사이 군용기 10여 대를 동부 내륙과 서부 내륙지역, 서해상에 띄웠다"고 밝혔다. 군용기는 우리 측이 설정한 ‘전술조치선’을 넘어 남쪽으로 접근했다.

전술조치선은 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20~50km 북쪽 상공에 설정한 가상의 선이다. 북한 군용기가 전술조치선 가까이 오거나 넘어올 경우 우리 공군 전투기가 즉각 출격해 맞선다. 합참은 “군용기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설정한 서부 내륙 비행금지구역 북방 5㎞(MDL에서 25㎞)까지, 동부 내륙에서는 비행금지구역 북방 7㎞(MDL에서 47㎞)까지, 서해 지역에서는 NLL 북방 12km까지 접근했다가 북상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이어 이날 오전 1시 20분쯤부터 5분간 황해도 마장동 일대에서 서해로 방사포 130여 발을 쐈다. 또 평양 순안지역에서 오전 1시 49분쯤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이어 동부지역으로 옮겨 2시 57분쯤부터 10분간 강원도 구읍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방사포 40여 발을 쐈다. 군 대비태세가 취약하기 마련인 심야 시간대를 골라 MDL과 동·서해로 장소를 바꿔가며 양동작전을 펼친 셈이다.


합참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

합참은 북한이 쏜 포탄이 “9·19군사합의’에서 정한 NLL 북쪽의 동·서해 ‘해상 완충구역’ 내에 떨어졌다”며 “명백한 9·19합의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해상 완충구역’은 남북한이 우발적 충돌이나 긴장 고조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해안포 포문을 폐쇄하고, 해상 군사훈련과 해안포 등 중화기 사격행위를 금지한 공간이다. 북한은 앞서 △2019년 11월 서해 창린도 포사격 △2020년 5월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우리 군 감시초소(GP)를 향한 사격 등으로 9·19합의를 위반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사방에서 무력시위에 나선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국방부는 오전 9시 서해지구 군 통신선으로 북측의 동·서해 해상완충구역 내 방사포 사격이 9·19 군사합의 위반임을 지적하고, 합의 준수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장성급 군사회담 수석대표 명의 대북전통문을 발송했다. 합참도 이어 발표한 대북 경고성명을 통해 “우리 군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고 지속적인 도발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고 있어 엄중히 경고하며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도발 의도는... "잘 짜여진 각본... 긴장 고조 의도 깔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잘 짜여진 각본”이라며 “북한이 긴장을 고조시키며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전술핵을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투발 수단을 공개해 위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연이은 북한의 군사활동은 미사일 중심에서 공군, 지상군의 복합적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발사 장소와 시간을 달리하며 우리 군의 대비태세를 떠보려는 의도도 깔렸다. 북한은 올해 들어 탄도미사일을 24차례, 순항미사일을 최소 3차례 발사했다. 특히 지난달 25일부터 20일 동안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8회 몰아치기로 쏘아댔다.

이 중 평양 순안(3회)을 제외하면 평안남도 태천과 순천, 자강도 무평리, 평양 삼석, 강원도 문천 등 발사장소가 각기 다르다. 발사시점도 오전 이른 시간과 오후 늦은 시간, 여기에 심야 발사까지 각양각색이다. 심지어 바다가 아닌 저수지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는 기발한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北, 손에 쥔 카드는… 핵실험ㆍICBMㆍ국지도발 등 다양

류 전문연구위원은 “최근 양상은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도발처럼 김정은의 집권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국지도발 활동을 연상케 한다”고 짚었다. NLL이나 전방지역에서 북한의 추가 국지도발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화성 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쏠 수도 있다. 신 국장은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단을 보여줘야 미국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7차 핵실험은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다. ICBM 발사와 핵실험의 패키지 도발은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장관은 전날 참의원에 출석해 “북한이 핵실험장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핵실험이 임박한 시나리오에 무게를 실었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