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90년대생이 온다'. 수년 전부터 회사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세대'로 부상한 1990년대생. 이제는 출산율 전 세계 꼴찌 탈출을 위한 최전선 예비 부모로 조명받고 있다. 유독 인구가 다른 연령대보다 많아 점점 굳어가는 저출생을 반전시킬 마지막 희망, 출생 전쟁의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 86만2,835명이었던 출생아는 1984년 64만4,793명으로 4년 만에 22만 명 가까이 떨어졌다. 1990년(64만9,738명)까지 60만 명대 중반을 기록하며 줄어들기만 하던 출생아는 1991년 70만9,275명으로 확 뛰었다. 이후 출생아 반등은 저출생이 본격 시작된 2001년 직전까지 이어졌다.
1990년대 출산율은 정부가 1980년대에 강하게 밀어붙였던 산아제한 정책을 점점 풀면서 치솟았다. 그 결과 1980~1990년대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된 지금, 이들은 저출생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지난해 1980년대 후반생으로 초산 연령대인 31~35세 여성 인구는 145만4,095명인 반면 그보다 어린 26~30세(1990년대 초·중반생) 여성 인구는 160만9,343명이다. 인구만 놓고 보면 1990년대 초·중반생이 초산 평균 연령인 32.6세(2021년 기준)에 도달하는 5, 6년 사이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는 연간 출생아 수(2021년 26만600명)를 반등시킬 가능성도 크다.
인구학자들은 정부가 1990년대생이 주로 아이를 낳을 시기인 향후 5년을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구가 많은 만큼 강력한 저출생 대책의 명분과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골든 타임'이기 때문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7월 실시한 '청년의 연애, 결혼, 성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1990년대생이 원하는 저출생 대책을 가늠할 수 있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사유로 여자(49.1%), 남자(66.4%) 모두 경제적 이유를 들었다.
꼭 수도권 내 대기업 정규직이 아니라 지방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근무해도 '삶의 질'이 보장돼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꿀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1990년대생의 출산을 유도하려면 엘리트뿐 아니라 모든 인재의 가치를 높이는 전원 활약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출산을 원하지 않는 두 번째 사유로 남자는 '아이를 잘 키우기 어려운 사회 환경'이라고 답한 반면, 여자는 '내 삶을 희생하고 싶지 않음'을 꼽은 점도 눈에 띈다. 육아휴직 등 자녀 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지만 승진 등 조직 내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는 분위기가 출산 기피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발표한 '2022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에서 자녀가 있는 여성이 정규직 말고 비정규직으로 취직할 가능성은 남성의 3배"라며 "젊은 여성이 가족 형성을 미루고 평생 가질 자녀 수를 줄이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1990년대생에 어울리는 정책의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저출산 정책은 과거 어린이집 확충 등 보육 중심에서 문재인 정부 시기 남성 육아휴직 장려 등 남녀 동등한 역할을 강조하는 젠더 중심으로 이동했다"며 "젠더 중심 정책만 해도 소위 '82년생 김지영'을 위한 것이었는데 MZ세대인 1990년대생에게 그대로 먹힐지 대책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대응 정책의 요구도 및 우선순위 분석: MZ세대 인식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쓴 박미경 안양대 조교수는 "MZ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으로 여기는 경향이 기존 세대보다 강하다"며 "정부가 결혼, 출산을 무조건 장려하는 정책으로 접근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