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자니 돈 빌린 서민이 우네... 금리 '빅스텝' 딜레마 빠진 정부

입력
2022.10.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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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이창용, "물가 안정" '이심전심'
"이자 부담 취약층 어쩌나" 속 타는 정부
한계 닥치면 당국 간 이견 불거질 수도

한국은행의 잇단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정부가 고민이 깊다. 전년 대비 5%대 물가 상승세를 꺾으려면 고강도 통화 긴축이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얼마간 경기 침체도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불어난 이자가 감당이 안 돼 벼랑에 서는 취약층 서민ㆍ청년이 늘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진퇴양난인 셈이다.

13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전날(현지시간) 출장차 방문한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을 만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당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석 달 만에 다시 밟은 빅스텝과 관련, “물가 안정이 정책 최우선이고 이것이 금리 정책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금통위 판단을 믿는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한은과 시각차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금리를 대폭 올려야 할 이유는 또 있다. 1,400원대에서 고공행진 중인 원ㆍ달러 환율이다. 한국보다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는 미국과 금리 차이가 벌어지면 한국 금융시장에서 외화가 빠져나가 환율이 더 뛸 게 분명하고, 낮은 원홧값은 수입 물가를 올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도록 만든다. 금통위 결정은 이를 감안한 것이고, 추 부총리도 “환율이 많이 튀는데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환율 불안이 계속 간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기재부는 물가 관리에 집중할 수 있는 한은과 입장이 다르다. 경기나 성장 동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금리 인상은 이자 부담을 늘려 가계ㆍ기업의 소비ㆍ투자 여력을 잠식하고, 경기를 둔화시켜 성장률을 끌어내리기 십상이다. 전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금리 인상의 여파로 경기의 하방 압력이 가중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고, 한은은 내년 경제 성장률이 8월 전망치(2.1%)를 하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더불어 정부 입장에서 좌시할 수 없는 것은 장사나 살 집 마련을 위해 빚을 낼 수밖에 없었던 소상공인ㆍ자영업자나 서민 등이다. 추 부총리는 “금리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면서도 “정책을 조합하려면 취약 부분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고심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지난달 방송에서 금리 인상 필요성과 관련해 “여러 대출자가 금리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한 뒤 금통위에 압력을 넣으려 한 것 아니냐는 빈축을 산 적도 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방기선 기재부 제1차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금리 인상에 따른 취약차주의 금융 부담 완화를 위해 맞춤형 금융 지원 방안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가겠다”며 정부 구상을 소개했다. △소상공인ㆍ자영업자ㆍ중소기업 등 대상 대출 만기연장ㆍ상환유예 조치 기한 연기 △서민 대상 주거 관련 ‘안심전환대출(변동금리→고정금리)’ 공급 확대 △저소득 청년층 대상 안심전환대출 금리 추가 인하 등이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금리 수준이 더 높아질 경우 30년 전 일본처럼 한국 역시 역성장과 장기 침체, 주가ㆍ부동산 폭락을 겪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재정 상태도 그렇다. 현재 규모만으로 국가채무의 위험도를 판단하면 곤란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저출생ㆍ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향후 연금ㆍ의료 지출 급증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약층 보조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보고서에서 물가 억제를 위한 금리 인상을 계속할 요량이면 정부 지출 확대나 감세를 자제하고 저소득층 대상 보조금 등 지원책을 제한해 정부 부채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금리 0.75% 인상)’ 가능성은 재정ㆍ통화 당국 간 긴장을 부추길 만한 변수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금융학회장)는 “지금은 정부가 빅스텝을 감내하는 양상이지만 추가 금리 인상 결정, 경제 지표 악화, 취약차주들이 직면할 한계 상황 등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내년 초쯤 속도 조절을 바라는 정부와 여전히 물가 잡기에 매진할 한은 간 갈등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세종=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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