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에코의 어깨에 서서...비밀의 커튼 펼치는 인문학의 쾌감

입력
2022.10.13 21:00
14면
'에코의 위대한 강연'

어려워 죽겠는데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묘한 쾌감도 느껴진다. 인류 문명과 예술에 드리운 비밀의 커튼을 펼치는 지적 즐거움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새 책 ‘에코의 위대한 강연’ 얘기다. 한동안 소설과 에세이가 인기였지만, 역시 에코의 천재성과 광기는 역사와 철학, 종교와 정치를 논할 때 드러난다.

뭐가 얼마나 위대하기에. 에코 인생 마지막 15년의 강연을 모았다. 매년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지식축제 ‘라 밀라네지아’에 보낸 글 열두 편을 엄선했다. 일 년에 한 번 보낸 글이니 허투루 쓸 리 없다. 비밀과 음모, 아름다움과 추함, 역설과 아포리즘, 성스러움 등 평생 탐구한 주제를 솜씨 좋게 요리했다.

에코는 평생 ‘거인과 난쟁이’ 아포리즘에 집착했다. 책도 “나는 늘 거인과 난쟁이에 끌렸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그런 구절을 새겼다. “우리는 난쟁이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다. 우리는 작지만 때로 거인보다 멀리 본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창조적이라고? 우리만큼 찬란했던 선조의 유산에 올라탔을 뿐이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독선과 광신을 경계하자.

예술을 다루는 에코의 언어는 단연 빛난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놓인 밀로의 ‘팔 없는 비너스’에 구름 관중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이 비너스는 잃어버린 전체를 상상하도록 우리를 매혹한다.” 개선문, 피라미드, 그리스 회랑 등 폐허에서 느끼는 감정도 마찬가지일 게다. “그 고독과 침묵 속에 우리는 깨닫는다. 모든 것은 무너지고 소멸하고 지나간다.”


시니컬한 유머도 여전히 위력적이다. 최후의 심판 때 부활하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신학에서 ‘불완전함’은 ‘모자라고 추한 것’이라서 완벽하게 부활할 테다. 창자 속 배설물은 고귀한 체액으로, 탈모로 빠진 머리는 풍성하게 뒤바뀐다. 생식기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완벽한 낙원에 입장할 복된 이들은 ‘아내도 남편도 없는’ 상태다. ‘예술은 불완전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에코는 이렇게 표현한다. “낙원에서는 머리를 예쁘게 말 수는 있지만 섹스는 할 수 없다.”

귀스타브 도레, 단테, 사르트르, 제라르 드 세드, 토마스 아퀴나스 등 대가들의 이름이 휙휙 등장한다. 솔직히 대다수는 들어본 적도 없다. 고전(古典)을 현재와 비교하며 새 의미를 부여하는 기막힌 능력에 감탄이 나올 뿐. 한 권의 책이지만 수십 권을 동시에 읽는 듯한 포만감이 들다 못해, 배탈이 날 지경. 책의 주석 격인 ‘찾아보기’만 장장 일곱 페이지다. 인문학 꽤나 읽었다면, 익숙한 이름을 찾는 부수적 재미도 느껴보길.

‘음모론’은 비교적 현대 정치와 연결되는 내용이니 덧붙여 본다. 인류는 늘 보이지 않는 힘이 세계를 좌우한다는 음모론에 사로잡혔다. 트로이 전쟁을 신들이 일으켰다고 믿는 그리스인이나, 독점 자본가와 정치 세력이 세계 질서를 좌우한다고 믿는 현대인이나 똑같다. 이 음모론은 애초에 실체가 없기에 반박하거나 증명할 수 없어 위험하다. 뉴욕 9ㆍ11 테러가 유대인의 음모라고 믿는 이들은 미국이 중동에 개입하는 진짜 목적을 간과한다. “음모론을 통해 이익을 얻는 집단은 오히려 음모론이 겨냥하는 집단”이라는 게 에코의 경고다.

에코는 생전 인터뷰에서 “인간의 생각과 사상이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했다. 에코는 그 예언을 자신의 이름으로 증명했다. 이 위대한 사상가는 2016년 봄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지혜를 담은 책은 우리 곁에 머문다. 2018년 국내에 소개된 마지막 소설 ‘제0호’, 2021년 발행된 에세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 등. 거인과 난쟁이에 집착하던 에코는 그렇게 스스로 거인이 되어 자신의 어깨를 후대에 내어주고 있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