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는 결국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국' 우크라이나에 총부리를 겨누게 될까.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후방기지 역할을 해온 벨라루스의 참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크림대교 폭발 이후 '피의 보복'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참전 압박이 거세지면서다.
12일 AFP통신은 러시아의 맹방인 벨라루스의 우크라이나 참전이 목전에 왔다고 전망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 10일 "러시아와 합동으로 1,000명 이상 부대를 구성해 우크라이나 접경지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담이 열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난 지 이틀 만에 내놓은 깜짝 발표였다.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푸틴 대통령은 비공식적으로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참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동유럽 및 국제연구센터의 나자 더글러스 연구원은 "벨라루스 철도회사가 러시아로부터 대형 호송대를 기다리고 있고, 훈련소 역시 러시아군을 받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며 "루카셴코는 행동할 준비가 됐다"고 AFP에 말했다.
벨라루스가 참전하면 현재의 우크라이나 땅에 9세기경 세워진 첫 국가 키이우루스에 뿌리를 둔 3개국(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이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하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다. 이후엔 각자 갈 길을 갔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을 지향한 반면 벨라루스는 다시 러시아와 밀착했다. 서방과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었던 탓이다.
독립 이후 처음 치른 1994년 대선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한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후 6연임에 성공하며 28년째 집권 중인 '유럽 최후의 독재자'다. 2020년에는 반(反)루카셴코 시위가 불붙는 와중에 러시아의 지원으로 기사회생했다. 푸틴 대통령의 후견 없이는 장기 집권 자체가 흔들릴 처지다.
벨라루스 외교관 출신으로 현재 유럽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파벨 슬런킨은 "2020년 시위에서 살아남은 이후 루카셴코는 정치·경제적으로 푸틴에 더 의존하고 있다"며 "크렘린이 필요하다면 군사적 지원을 보류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벨라루스의 참전 결정에도 루카셴코 대통령에겐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엇갈린 전망도 나온다. 벨라루스의 야권 지도자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의 수석 고문 프라낙 비야초르카는 벨라루스의 참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군 지도부는 우크라이나군의 성공을 보면서 크게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군대를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다"며 "아무도 푸틴을 위해 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현실적 문제도 있다. 구식 무기를 가진 데다 전투 경험마저 전무한 벨라루스군의 참전은 러시아군 전력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비야초르카는 "전투에 당장 투입될 병력은 최대 7,000명에 불과하지만, 공격 작전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했다. 참전을 지지하지 않는 자국 여론도 루카셴코 대통령에겐 큰 부담이다.
벨라루스는 군대만 파병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도 러시아군의 후방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북쪽으로 1,130㎞를 접하고 있는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는 불과 90㎞ 거리다. 러시아는 합동 군사훈련을 빌미로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우크라이나 북부 접경 벨라루스에 배치한 후 지난 2월 24일 손쉽게 밀고 내려왔다.
벨라루스의 참전은 우크라이나에 예민한 문제다. 우선 전선이 확대되는 부담이 크다. 북부를 방어하기 위해 현재 동남부에 집중된 군사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벨라루스가 파병을 하지 않더라도, 러시아군의 벨라루스 국경 배치를 허용하는 것만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즉각 "벨라루스와의 접경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