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로 모든 것을 잃고 이재민이 된 지 2년 하고도 2개월.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형편이 못 돼 아직도 임시거처에서 지내는 이들이 있다.
폭우로 섬진강 물이 범람하면서 전남 구례군 일대가 물에 잠긴 2020년 여름, 갈 곳 잃은 이재민 1,200명 중 114명은 구례 공설운동장과 양정마을 등에 조성된 임시조립주택에 수용됐다. 그 후 각자 주택을 신축하거나 수리하는 등 새 집을 마련해 떠났지만 총 3가구 5명의 이재민은 아직 임시거처에서 살고 있다. 모두 일용직 노동자나 기초수급자로, 자력으로는 일상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들이다.
지난 7일 저녁 전남 구례군 구례공설운동장 공터. 총 17동의 임시주택 중 불이 켜진 집은 단 1곳뿐이었다. 이 집에선 문창남(55)씨와 아내, 장애가 있는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다. 집 안 한쪽 벽면에는 직업이 없는 문씨가 지난 2년간 기대어 앉은 흔적이 누렇게 남아 있었다.
문씨는 10여 년 전 퇴직금을 받아 아들의 치료비를 충당하려 공직생활을 그만뒀다. 이후 혈류장애로 왼팔과 왼다리를 쓸 수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5년 전엔 파산신청까지 했다. 그나마 광복군 활동을 한 부친 덕에 어머니 앞으로 유족 연금이 나오지만, 대부분 요양병원비로 지출된다. 아내가 편의점에서 일하고 받는 월급이 세 식구의 주수입원이다.
문씨의 집은 2년 전 홍수로 완파됐다. 그에게는 주택복구비 1,600만 원과 주택 및 가재도구 손해사정 금액 중 국가책임 인정분 48%가 지급됐다. 합쳐서 5,000만 원가량. 이 돈으로 잔해를 철거하고, 새 주택을 짓고, 가구와 가전을 비롯한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씨는 최근에야 독립유공자 주택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새 집을 짓기 시작했다.
문씨가 사는 운동장 공터에서 살고 있는 홍정택(55)씨는 수해를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잃었다. 복지관을 위탁 운영하던 재단의 운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화근이었다. 취약계층을 돌보던 홍씨가 재난과 노사갈등에 휩쓸려 본인도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현재 홍씨의 살림 밑천은 수해 당시 고지대로 대피할 때 이용했던 1t 트럭이다. 트럭이 있어서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일의 폭이 넓다고 한다. 과일 수확 등의 일감을 받아 월 1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받아 생활한다. 식빵과 고구마로 아침을 때우고 그날그날 일용직을 구하기 위해 트럭을 몰고 나가는 것이 홍씨의 일상이다.
늦게나마 갈 곳이 생긴 문씨에 비해 홍씨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수해 당시 세입자였던 홍씨는 가재도구 손해배상금 480만 원과 침수 주택복구비 200만 원만 수령할 수 있었다. 직계 가족도 없고 타지에서 이주해 와 구례에 연고도 없다. 공설운동장의 임시주택들은 당초 지난달 말까지만 사용 계약이 돼 있어 퇴거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이채석(57)씨는 양정마을 이재민 단지에 남은 마지막 이재민이다. 양정마을 곳곳에는 11동의 임시조립주택이 흩어져 있는데, 이씨가 유일한 실거주민이다. 이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공근로를 했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이 심해져 결국 일을 그만뒀다. 지금은 기초수급자 생계급여에 의지해 살고 있다.
최소한의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원·배상금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의 경제 여건과는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책정되는 지원 금액과 장시간이 소요되는 배상 절차로 인해 이들은 장기 이재민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문씨는 “막상 직접 피해를 입고 그런 일(재난)이 생기기 전에는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재난 전과 후 여러 면에서 생각이 많이 바뀌어 버렸다”고 나즈막이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