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1시 35분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다 건너오기도 전에 우회전을 하며 들어온 회색 승용차가 한국방송통신대 방면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빨간색 경광봉을 든 경찰관이 차량을 멈춰 세우더니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범칙금 6만 원, 벌점 10점을 부과한다”고 고지한 뒤 ‘딱지(고지서)’를 뗐다. 운전자는 “바뀐 제도를 잘 몰랐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은 이날부터 교차로 우회전 시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차량 단속에 나섰다. 도로교통법이 바뀌면서 운전자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할 때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물론, 통행 ‘의사’만 보여도 멈춰야 한다. 규정을 어긴 운전자에게는 범칙금 6만 원(승용차 기준)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경찰은 7월 12일 이런 내용의 개정안이 시행된 후 3개월간 계도기간을 거쳤다.
단속 첫날 교통량이 많은 서울 주요 교차로를 점검해 보니 대체로 일시정지 의무가 자리 잡은 모습이었다. 낮 12시 30분부터 30분간 이화사거리 인근에서 우회전하는 차량 20대 중 19대(95%)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췄다. 횡단보도 주변에 보행자가 대기하고 있을 때도 운전자들은 일단 차를 세웠다. 서울 혜화경찰서 교통안전팀이 이날 40분 정도 실시한 단속에서도 적발 차량은 1대에 불과했다.
당곡사거리도 상황은 비슷했다.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낙성대 방면으로 우회전하는 차량 33대 가운데 32대(96.9%)가 횡단보도 진입 전 일단 멈췄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고, 주변 인도에 대기자가 없는데도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불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부 차량도 눈에 띄었다.
보행자들은 강화된 규정을 크게 반겼다. 이화사거리에서 만난 주민 박관수(80)씨는 “이곳은 횡단보도 신호가 짧아 걸음이 느린 노인들이 다 건너가기 전에 빨간불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며 “급하게 우회전하는 차들 때문에 치일 뻔한 경험이 종종 있었는데 법이 바뀌어 사고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3개월 계도기간에 발생한 우회전 교통사고는 3,38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478건)보다 24.4% 감소했다. 사망자 수 역시 45.0%(40명→22명) 급감했다.
반면 운전자들은 더러 불만을 토로했다. 택시기사 김모(58)씨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고, 대기하는 사람이 안 보이면 움직여야 하는데 ‘신호가 빨간불이 될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며 “차량 정체만 더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한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지나가려고 하는 건지, 아닌 건지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경찰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발을 디디려 할 때 △손을 들어 횡단 의사를 표시할 때 △횡단보도를 향해 빠르게 걸어올 때 등 통행 의사가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일시 정지 의무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무질서한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오후 2시부터 30여 분간 신림역 사거리에서 당곡역으로 우회전하는 차량 69대 중 40대(57.9%)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한 보행자가 “지나가라”고 손짓하자 차량 8대가 연속으로 횡단보도를 통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