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공방의 승자와 패자

입력
2022.10.12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친일 국방’ 공세는 또 한번 국민의힘에 상처를 남겼다. 대대적 반격 와중에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며 식민사관을 드러내 친일 이미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여당 내에서도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그를 비판했다. 이 대표로선 야당 지지층은 결집시키고 여당 이미지를 흠집 낸 데다 균열까지 일으켰으니 승자로 여겨질 법하다.

□ 친일·반일 공방의 지지층 결집 효과는 문재인 정부 시절 뚜렷이 확인됐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후 일본의 무역 보복에 문 전 대통령이 ‘극일’을 내세우며 버틴 2019년 7월 국민 여론은 ‘잘 대응하고 있다’(50%, ‘잘못 대응’은 36%)는 쪽이었고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했다. 앞서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에 대해서도 ‘잘한 결정’(63.2%)이라는 여론이 ‘잘못한 결정’(20.5%)을 압도했다. 2019년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SNS에 올림으로써 과거 ‘빨갱이’ ‘종북’만큼 강력한 선동의 도구로 ‘친일’이 등극했음을 각인시켰다.

□ 사실 ‘반일 감정을 이용한 정치’는 문 정부만의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8월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하락세였던 지지율을 9%포인트나 끌어올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1,000년이 흘러도 변할 수 없다”는 강도 높은 3·1절 연설을 하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아베 일본 전 총리를 대놓고 무시하는 등 위안부 합의 전까지 반일 행보를 걸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저자세 외교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 양국 관계 경색은 이런 시간이 쌓인 결과다.

□ 한국 (그리고 일본) 정치인들은 국내 정치를 위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고조된 반일 감정이 관계 개선의 여지를 좁히는 악순환을 자초했다. 악순환을 깨려는 윤 정부의 시도는 의미가 있지만 식민사관에 기대어 성공할 수는 없다. 이 대표는 눈앞의 승리만 좇다가 일본을 배제한 안보가 가능하냐는 무거운 과제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정진석, 이재명, 국민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일이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