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외국인이라?…코트라, 성희롱 가해자에 '제 식구 감싸기'

입력
2022.10.13 04:30
김회재 의원실, 코트라 '성비위 징계 현황'
인사위 "의사소통 문제" "뒤늦게 신고" 두둔
성비위 징계 모두 '견책', 신고는 한국어·영어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에서 최근 4년간 발생한 3건의 성비위 사건 모두 징계수위가 가장 낮은 '견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한국 직원의 외국인 직원에 대한 성희롱을 적발하고도 언어 문제를 이유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솜방망이 징계를 한 경우도 있었다.

외국인 직원 성희롱에… 인사위원 "가해자도 억울" 두둔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아시아지역 해외 코트라 무역관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6년 9월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뒤, 담당 부서 관리자급 직원 B씨와의 식사 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B씨는 당시 A씨의 손을 잡고, “집에 같이 가고 싶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19년 4월 해외직원 워크숍에서 담당 지역본부장과 과거 사건 관련 면담을 했고, 지역본부장은 이를 신고했다. 코트라는 식사에 동석한 다른 직원으로부터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언을 수집해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하지만 B씨에게 내려진 징계는 가장 낮은 수준인 ‘견책’이었다. 당시 열린 인사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회의 참석자들이 B씨 감싸기에 나선 정황이 뚜렷했다. 참석한 한 본부장은 “가해자의 중국어 구사 정도를 감안하면 정황상 의사소통에 오해가 있었을 것”이라며 “가해자도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두둔했다.

“'집에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는 A씨의 신고 내용에 대해 B씨가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고 해명한 것을 두고 의사소통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B씨는 두 차례(1999년 3월~2003년 3월, 2005년 2월~2009년 1월)에 걸쳐 만 8년 이상 중국 근무를 한 직원이었다. 중국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엔 지나친 감싸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른 인사위원은 “사건 발생 후 거의 3년이 지나서 신고한 부분이 이해가 안 가고, 기억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사위원들이 B씨를 감싸는 가운데 외부위원으로 참석한 노무사만이 “직원으로서의 품위 손상 행동이 있었고,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과 구체성이 있었다”며 “성희롱 사건은 주로 피해자 의견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비위 3차례 모두 견책에 그쳐… 다국어 신고시스템 '마련 중'

코트라는 다른 두 건의 성희롱 사건에서도 견책 징계만 내렸다. C씨는 동료 직원과의 성관계를 내포하는 내용을 유포했고, D씨는 부하직원과의 면담 중 성희롱 발언을 했다. 코트라 규정상 ‘비위의 정도가 약하고 과실이 작은’ 성희롱의 경우 견책~감봉 수준의 징계를 한다. 앞서 3차례 모두 가장 낮은 수준에 그친 것이다.

해외진출 기업의 업무를 지원하는 코트라의 특성상 외국인 근무자가 많아 여러 언어가 쓰이지만 성비위 신고는 한국어와 영어로만 가능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에 대해 코트라는 "일본어와 스페인어 등 다국어 익명신고 채널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혀왔다.

김 의원은 "이런 징계결과는 코트라 내부의 왜곡된 성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성 비위 행위자에 대한 '감싸주기식' 심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공정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확실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