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에 마약을?"... 국내서 한국인 '보디패커' 첫 확인

입력
2022.10.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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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대장에 밀봉한 엑스터시·케타민
부검결과 엑스터시 79개 위에서 터져 
모발에서 마약 미검출...일반인 운반책

몸 속에 마약을 넣고 운반하는 이른바 ‘보디패커(body packer)’ 활동이 국내서도 처음 확인됐다. 외국인 보디패커가 한국을 경유해 다른 국가로 이동하다 적발된 사례는 있지만, 국내 유통을 목적으로 외국에서 마약을 들여온 한국인 보디패커가 드러난 적은 없다.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각종 마약이 범람하면서 보디패커를 활용한 마약류 유입 우려도 커지고 있다.

12일 서울 용산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오후 5시쯤 용산구 한 주택에서 50대 남성 A씨가 거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엑스터시로 불리는 MDMA 급성중독이었다. A씨 혈액에선 20.36㎎/L의 엑스터시가 검출됐다. 통상 마약사범들을 대상으로 한 검사에서 0.1~2.4㎎/L가 검출되는 것과 비교하면 200배 가까운 수치다. 그의 위에서는 엑스터시 봉지 79개가 터진 상태로 발견됐다. 봉지 개당 1알의 엑스터시가 담겨 있었다. 포장이 뜯어지지 않은 온전한 엑스터시 130개도 함께 발견됐다. 엑스터시 치사량이 7~14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체내에서 봉지가 터지면서 다량의 엑스터시가 몸속에 퍼져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A씨 대장 안에서는 콘돔에 밀봉한 케타민 분말 118g이 발견됐다. 병원에서 수면마취제로 쓰이는 케타민은 현행법에 마약으로 분류돼 있다. 약물로 쓰일 때는 주사제로 판매되지만, 마약으로 둔갑하면 직접 흡입하거나 음료에 섞어서 마실 수 있는 분말 형태로 유통된다. 마약 사범들이 한 번에 평균 200~300㎎을 투약하는 만큼 600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분량이다.

주목할 부분은 A씨 모발에서는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약 복용자가 아닌 국내 유통을 위해 마약을 운반한 보디패커일 확률이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경찰은 공범 및 유통책 여부를 수사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내국인이 보디패커로 활동하다 적발된 최초 사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8월 태국으로 출국한 A씨는 사망 하루 전인 지난달 24일 말레이시아에서 입국했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사망자는 국내 유통책에게 마약을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도 엑스터시나 케타민 수요가 많아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엑스터시와 케타민은 2018년 버닝썬 사태 당시 핵심 인물들에게서 검출돼 ‘클럽약물’로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다.

원래 보디패커는 중남미에서 미국이나 유럽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방식이었다. 국내 수사당국이 확인한 것도 2003년 페루에서 미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한국 항공기를 타고 홍콩으로 향하던 페루 국적 밀반입자가 한국 국적기에서 적발된 경우였다. 보디패커는 마약을 삼키거나 항문으로 밀어 넣어 운반한다. 운반 후엔 구토제나 관장약을 사용해 꺼낸다. 체내에서 다량의 마약 봉지가 터지면 A씨처럼 급사할 가능성이 커 상당히 위험한 운반 방식으로 꼽힌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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