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밝히겠다"던 가세연 모금… 여당 무더기 수사 후폭풍

입력
2022.10.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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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가세연, 총선 직후 '선거 무효소송 공탁금' 후원 계좌 
선관위 "낙선자 대신 공탁금 모집, 정치자금법 위반"
김세의·강용석 경찰 고발, 낙선자 10여명 수사의뢰
"선거 후 정신없을 때 연락... 내용 잘 몰라" 항변에도 
"당사자 명의 소송 모를 수가" "모금 단계부터 문제"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가 제21대 총선에서 제기한 선거 무효소송 여파로 여권 정치인들이 무더기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가세연이 낙선한 정치인들 대신 소송 자금을 모았기 때문인데, 선관위는 이를 정치자금법 위반 행위로 보고 관련자들을 경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했다. 일부 낙선자들은 소송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됐다는 입장이지만, 모금 활동을 토대로 당사자 명의로 소송이 이어진 만큼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 "무효소송 공탁금은 정치자금"... 경찰 고발·수사의뢰

18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해 9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가세연 운영진과 국민의힘 21대 총선 출마자 10여 명에 대한 고발장과 수사의뢰서를 전달받았다. 수사 대상이 된 출마자 중에는 현직 지방자치단체장과 전직 국회의원도 포함됐으며, 일부는 이미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가세연은 2020년 4·15 총선 직후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선거 무효소송 청구 명목으로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후원금을 걷었다. 선관위는 법으로 정한 후원회 지정권자가 아닌 가세연이 공탁금을 모금한 점을 문제 삼아 자체 조사에 착수해, 가세연 운영진이었던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기자를 경찰에 고발하고 연루된 낙선자들을 수사의뢰했다. 경찰은 이들을 정치자금법상 부정수수 혐의로 입건했다.

선관위에 따르면 선거 무효소송에 사용되는 공탁금은 정치자금에 해당한다. 선관위는 경찰에 제출한 고발장과 수사의뢰서를 통해 △법에서 명시한 방식 외의 정치자금 모집·수수행위는 모두 위법이라고 본 판례 △국회의원 임기만료 후 정치자금 사용도 법 적용 대상으로 본 판례 △'정치활동을 하는 자'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정치자금으로 본 판례에 근거해 가세연의 모금행위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봤다.

"몰랐다는 주장 어려워" 진술 엇갈릴 가능성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지난해 진행된 선관위 자체조사에서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소속 낙선자들은 “가세연 연락을 받았을 당시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거에 떨어지고 정신 없을 때 대신 소송해 주겠다고 하길래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사자 이름으로 가세연이 무효소송을 진행했다면 이를 당사자와 무관한 소송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수사기관 판단이다.

특히 낙선자들이 가세연의 위법한 후원금 모집 과정을 알면서도 소송 진행에 동의했는지도 경찰 수사 대상이다. 선거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직 검사는 "당사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 당사자 명의로 무효소송이 진행됐다면 인적사항 도용"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려면 주소나 주민번호 등을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가 소송 진행 내용을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선관위 등에 따르면 가세연이 무효소송을 제기한 선거구는 소장이 각하·취하된 19곳을 제외하고도 총 106곳에 달한다. 이 중에는 낙선자 이름으로 소송을 진행하되 가세연 측이 법률대리를 맡은 경우와, 가세연이 선거구 주민들의 인적 사항을 취합해 제3자로서 소송을 제기한 경우 등이 혼재돼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치자금법은 모집 단계부터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수사가 진행될수록 조사 대상은 늘어날 수 있다"며 "가세연과 낙선자들 사이의 진술이 엇갈릴 가능성도 있어 수사가 마무리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 "부정선거 없었다" 기각 판결... 구독자들 사기·횡령 고소도

가세연은 유튜브를 통해 부정선거 무효소송 모금 계좌를 공지한 뒤 한 달여 기간 동안 수억 원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법원은 올해 7월 민경욱 전 의원이 인천 연수구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무효소송에서 "원고(민 전 의원)는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했다"며 기각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논리로 무효소송이 제기된 만큼 줄기각이 예상된다.

그동안 부정선거 무효소송의 정당성이나 모금액 사용처는 가세연 후원자들 사이에서도 지속적인 논란거리였다. 특히 가세연 내부 구성원이 지난해 초 "부정선거 주장에 합리적 근거가 없고 모금액이 사적으로 유용되고 있다"는 폭로 영상을 올리면서, 일부 후원자들이 가세연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2년째 수사 중이다.

무효소송 기각에 이어 경찰 수사까지 늦어지자 후원자들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일각에선 "가세연이 한 건이라도 무효소송을 진행한 건 사실이기에 사기죄를 적용하긴 어렵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유튜브를 통한 계좌 후원금 모집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무효소송을 위한 모금 행위를 어떻게 규정할지가 관건"이라며 "모금 행위를 기부금품법 등 법적 테두리 내에 둔다면 시기별로 후원금을 구분해 사적 전용이나 초과액 반환 여부를 문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