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과의 전쟁'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 방향은 금융·통신 분야의 피해 예방과 수사·행정 분야의 범죄 근절로 나뉜다.
예방책은 지난달 29일 '보이스피싱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발표됐다. 보이스피싱이 휴대폰 등 통신기기를 매개로 한 금융사기인 만큼 범행 과정의 통신·금융 경로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통신 대책엔 대포폰 근절을 위한 개인당 회선 수 제한(최대 150개→3개), 신흥 발신번호 변조 장비인 심박스의 통신이용 차단 조치가 포함됐다. 금융 대책엔 비대면 계좌 개설 과정에서 신분증 진위 확인 전면 의무화, 오픈뱅킹 가입 후 3일간 이체 제한 등이 있다. 특히 계좌이체 제한을 피해 피해자에게 직접 현금을 받아내는 대면편취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ATM 무통장 입금 한도를 지금의 절반인 50만 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앞서 7월엔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출범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합수단은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파견된 50여 명으로 구성됐다. 보이스피싱 대응이 소관기관별로 이뤄져 통합적 대처가 어렵다는 그간의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합수단은 연내 출범하는 통합신고·대응센터와 연계해 해외 총책 등 주요 가담자 검거, 조직 와해, 사기 이용 계좌 신속 동결, 피해금 환급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해외 조직원을 검거할 공조 기반 구축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보이스피싱 예방책부터 정교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시각각 변모하는 범행 수법을 신속히 간파해 대응 체계를 보완하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유럽에서 밀수돼 핵심 범행 도구로 쓰이는 심박스의 반입 차단을 위한 통관 강화, 외국인 명의 대포폰 개통을 막기 위한 통신당국과 출입국사무소의 정보 공유 등의 방안이 나온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보이스피싱 탐지 기법 개발 필요성도 제기돼 정부가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을 통해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여기엔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따른다.
민관 협력이 필수라는 견해도 있다. 다양한 수법을 동원해 일상 깊숙이 침투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적발·예방하려면 당국 역량만으론 부족하다는 얘기다. 서준배 경찰대 교수는 "영국은 국가 차원에서 사기 신고 단일 창구를 운영하면서 범죄 정보를 분석해 지역에 전달하고, 지역 경찰은 민간 영역과의 긴밀한 정보 공유와 협업으로 사기 예방에 나서는 체계를 갖췄다"며 "우리도 이를 참고해 '사기 방지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피해자에겐 돈을 되찾는 일이 절실한 만큼 피해 구제 강화도 시급하다. 지금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채권소멸절차' 규정에 따라 사기 이용 계좌의 잔고 한도 내에서 피해액을 돌려받을 수 있고, 그걸로 부족하면 통장 명의자나 관련 피의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야만 한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현행 피해 구제 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모든 금융기관에 보이스피싱 예방 보험 가입을 의무화해 보장금액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몰수된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으로 피해 회복 기금을 운영하자는 제안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