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얽혔더니 노벨상을 받았네

입력
2022.10.14 05:00
15면
루이자 길더 "얽힘의 시대"

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지난주 화요일 노벨 물리학상이 발표되자마자 머릿속에 든 생각. ‘앗, 드디어 이 할아버지들이 받았구나.’ 알랭 아스페(프랑스), 존 클라우저(미국), 안톤 차일링거(오스트리아)는 매년 ‘양자 얽힘’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꼽히던 이들이어서 마치 지인이 받은 양 반가웠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든 생각. "이참에 루이자 길더의 '얽힘의 시대'를 꼭 많은 사람에게 읽혀야겠다."

'얽힘의 시대'의 부제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만 보고서 한숨부터 쉬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양자 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다” 같은 20세기의 천재 과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먼의 자조 섞인 농담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분야의 악명은 유명하니까.

하지만 부제의 앞부분 “대화로 재구성한”에 주목해보면 어떨까. 사실 이 책은 ‘과학책인 듯 과학책 아닌 과학책’이다. 저자는 20세기 양자 역학에 중요한 발자국을 남긴 수많은 과학자의 논문과 회고 등을 참고하여 1909년부터 2005년 정도까지 양자 역학 100년의 역사를 아주 길고도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혹은 연극 같은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저자 자신도 뿌듯했던 듯 책머리에 따로 소개한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1923년 여름, 덴마크 코펜하겐의 전차 안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그리고 아르놀트 조머펠트가 정신없이 수다를 떨고 있다. (이 세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과학자인지 감이 안 온다면 잠시 검색창에 이름을 쳐볼 것!)

이 세 사람은 수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목적지를 한참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길을 돌이켜 다시 전차를 탔지만, 또 목적지를 지나쳤다. 이렇게 그들은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길더는 그들의 수다 내용을 당시의 회고와 그때 썼던 다른 편지를 인용해 격조 높게 재구성했다.

당연히 저자는 책 제목에 맞춤해서 당시 세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양자 역학을 중심으로 수다의 내용을 채워 놓았다. 하지만 전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그들이 했던 대화가 어찌 양자론뿐이었겠는가. 과학계의 뒷담화, 최근에 만난 매력적인 여성에 대한 은밀한 고백 등이 수다의 주된 내용이 아니었을까.

이 책 제목에 ‘얽힘’이 들어간 것도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이번에 세 과학자에게 노벨상을 안긴 ‘양자 얽힘’뿐만이 아니라 대화로 얽히고설킨 과학자 사이의 관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이렇게 말했다지 않은가. “과학의 뿌리는 대화다.”

과학책 좀 읽어서 양자 역학의 역사 정도는 익숙한 독자도 이 책을 읽고서는 틀림없이 놀랄 것이다. 그간 과학책에서 많이 다룬 1930년대까지의 이야기는 책의 3분의 1일뿐이다. 전쟁과 맨해튼 프로젝트(핵폭탄 만들기)를 거쳐 1946년부터 데이비드 봄, 존 스튜어트 벨 그리고 이번에 노벨상을 받은 세 과학자 등이 대화의 바통을 이어받아서 얽히기 시작하니까.

“두 실체는 늘 상호 작용하며 얽힌다”로 정색하며 시작한 이 책은 “스물한 살의 루돌프는 이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자기 외할아버지가 슈뢰딩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로 끝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는 물리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다. 테리 루돌프는 양자 컴퓨터를 연구하는 1973년생 물리학자. 도대체 무슨 사정인지는 책을 읽어볼 것!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