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번지는 '라'자 바이러스

입력
2022.10.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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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진정세 속에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의 건강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어떤 언어도 오류 없이 사용될 수는 없지만, 그런 오류들이 과도하게 확산하지 않고 정화작용으로 완화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정화작용에는 방송의 역할이 크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방송에서 사용하는 바른 언어 표현에 대비되어 오류가 인식되고 수정되는 원리이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많은 오류들이 일시 유행하다가 사라져 간다. 일례로, '같지 않은'은 '다른'인데 이를 '틀린'이라고 하는 오류가 한동안 횡행하다가 다행히 잦아드는 추세다. 그런데 최근 방송으로 정화되기는커녕 방송을 타고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결이 다른 오류가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고자 한다. 다름 아닌 '라'자의 남발이다.

이것은 직접 화법에서 유래된 듯하다. 화자의 말을 '~라고 말했다'고 전할 때 사용하는 '라'자를 불필요한 곳에 삽입하는 오류인 것이다. 예를 들면, 동생이 "난 공부하기 싫어!"라고 말했다고 직접화법으로 표현할 때는 '라'자가 필요하지만, 간접화법으로 내용을 전달할 때는 '동생이 공부하기 싫다고 말했다'고 해야지 '동생이 공부하기 싫다라고 말했다'고 '라'자를 넣으면 오류가 되는 것이다. 직접화법은 화자가 처한 상황 등을 함께 전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것이고, 내용 전달이 주가 되는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간접화법이 사용되는데, 이때 '라'자를 넣다보니 오류가 빈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오류는 간접화법에만 머물지 않고 '다'자로 끝나는 절에 조사 '고', '는', '면' 등이 연결될 때에도 '다'와 이들 조사 사이에 '라'자가 삽입되어 '~다라고', '~다라는', '~다라면' 등으로 변조되는 오류로 확대 재생산된다. 간접화법 밖의 이러한 오류의 예로는 '그가 그랬다라고 본다', '그가 그랬다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네가 간다라면 나도 간다'등이 있다. 이 오류는 이렇듯 다양하게 전이하며 우리말의 논리성과 간결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여타 오류와 달리 지식인층에서 발원하여 이를 고급 표현으로 오인하는 일반인들의 모방으로 확산해가고 있다. TV 방송들이 '라'자 오류가 수정된 자막을 제공하고는 있으나, 안타깝게도 음성에 치중하는 대다수 시청자의 무관심으로 이 오류는 부각되지 않은 채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순식간에 해결할 묘수는 없는 듯하다. 다만 첫째, 방송계 자체점검을 통한 문제 인식과 철저한 대책 마련이다. 둘째,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이다. 불필요한 '라'자가 포함된 표현은 고급 표현이 아니라 단지 오류라는 점을 명심할 일이다. 공학자인 필자가 우리말에 대한 전문성 아닌 애정 하나로 이 글을 쓰면서 망설임도 컸으나, 우리말의 오류가 하나라도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무모한 짓을 한 것이 아니었기를 소망한다.


박치모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