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발생한 대규모 횡령·이상 외환송금 등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질타가 나오면서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 내부통제 실효성을 더 높일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11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원에 대한 국정감사에는 시중은행장들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재근 KB국민·진옥동 신한·이원덕 우리·박성호 하나 등 은행장이 이에 출석했고, NH농협은행은 코로나19에 확진된 권준학 행장 대신 임동순 수석부행장이 나왔다. 주요 시중은행장이 일제히 국회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5년 만이다.
정무위원들은 최근 발생한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물었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시중은행의 금융사고(횡령·사기·배임 등) 규모는 1,982억 원에 달한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서민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쥐꼬리만 한 이자받으려고 예·적금을 들고 있다"며 "사상 최대 예대마진을 올리는 은행들은 성과급 잔치도 부족해 횡령사고까지 벌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특히 올해 4월 697억 원 규모의 횡령사고가 발생한 우리은행에 질타가 집중됐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한 개인에 의해서 700억 원에 가까운 횡령사고가 발생했다"며 "과거에도 대응책을 강구했음에도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감했다.
의원들의 질타에 시중은행장들은 모두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횡령 사고에 대해 백번 사과드려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부통제를 강화했지만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으로 횡령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냐'는 질의에는 "고객 돈이면 당연히 알았겠지만, 은행 자금이라 탐지가 안 됐다"고 해명했다.
횡령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별 내부통제 시스템을 분석해보니, 지금 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 원장은 "최고경영진이 내부통제를 비용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려가 크다"며 "내부통제 '마련' 의무뿐만 아니라 '준수' 의무도 부과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마련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준수 의무'는 부과하지 않아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