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을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집을 둘러보며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살펴봤다. 잔뜩 오염된 가스레인지, 10년이 넘자 느려진 컴퓨터, 고장 난 프린터,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선풍기, 오래되어 삐걱대는 책상, 금이 가기 시작한 책장, 촌스러운 의류, 코팅이 벗겨진 냄비와 프라이팬, 주인을 잃은 전선이 추려졌다.
고백하자면 버려도 될 것과 버리기 위해 굳이 이유를 찾아 붙인 것들이 섞여 있었다. 역사학자 수전 스트레서는 사람들이 물건을 버리는 이유를 다음처럼 말한다. '더럽거나 상한 것, 낡거나 고장 나서 못 쓰는 것, 쓰기 싫어진 것, 애초에 짧게 쓰고 버리도록 고안된 것, 촌스러운 것'으로 말이다. 여기에 비춰 본다면 프린터와 선풍기, 책장, 냄비, 프라이팬은 못 쓰는 것이므로 버려야 할 것이었다. 컴퓨터와 책상은 이사를 핑계 삼아 새로 장만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전선의 경우, 필요 이상으로 많아서 정리해야 했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말처럼 “원래부터 쓰레기인 물건은 없다.” 다만 버리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자 여러 물건의 이름이 ‘고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떤 고물은 윤회를 통해 다른 물건으로 태어나고, 다른 고물은 폐기된다.
고물을 집에서 배출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재활용센터에 ‘돈을 받고’ 파는 방법, 둘째, 고물상에 ‘돈을 받고’ 파는 방법, 셋째, 수집과 운반에 드는 ‘수수료를 내고’ 처리를 대행하는 경우다.
돈을 받고 팔아보겠다며 컴퓨터, 프린터, 선풍기, 냄비, 프라이팬을 차에 싣고 재활용센터에 갔다. 선풍기와 프린터, 컴퓨터는 팔지 못했다. 사더라도 수리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다음으로 시 외곽의 고물상에 갔다. 프린터는 분해하는 데 공임이 든다며 매입하지 않았다. 고물상 주인은 선풍기를 챙기며 “이런 소형가전은 우리한테도 번거러워요. 동주민센터에 가져다줘요”라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 메인보드와 CPU, 램은 전문 매입업체에 되팔 수 있다며 1,000원에 매입했고, 전선 몇 가닥도 가져갔다. 냄비 2개와 프라이팬 3개는 달아보니 2㎏이 나와서 ㎏당 300원씩 600원을 받았다. 총 1,600원을 받아들고 돌아왔다.
이제 남은 건 책장과 책상이었다. 운반하기 어려워 폐가구 정리 업체에 연락을 해봤다. 혹시나 찾아와 가구를 매입해 갈지 모른다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외려 처리 비용이 드는 일이었고, 구청에서 운영하는 대형폐기물 배출 사이트에서 대형폐기물 처리 신고를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처리비용은 책상 6,000원, 책장 1만 원이었다.
집을 떠난 고물 가운데 고물상에서 가장 값어치가 높은 건 냄비와 선풍기다. 특히 선풍기는 분해를 통해 얻어낸 자원의 가치가 높다. 선풍기에 들어있는 무게 500g 내외의 모터에서 고철 300~400g, 구리 150~200g 정도가 나온다. 고물상은 중간 거래업체에 2022년 9월 시세로 고철은 ㎏당 350원에서 400원 내외, 구리(동)는 ㎏당 8,000원에서 1만 원 내외에 되판다. 선풍기가 약 1,305원에서 2,160원 사이의 재활용 가능 자원이 된 셈이다. 게다가 스테인리스 냄비는 ㎏당 약 1,500원에 거래가 되니, 고물상은 2,400원의 차익을 남긴다. 폐전선의 경우에도 제면기와 같은 롤러에 피복선을 부순 후 남는 구리전선이 돈이 된다.
고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분해’와 ‘분류’다. 고물상에 오기 전의 완제품이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엄연히 작동하던 때의 쓸모도 고려되지 않는다. 모든 완제품은 분해를 거쳐 재생가능한 상태로 관리한다. 고물상은 종이, 고철, 알루미늄, 구리, 스테인레스, 플라스틱(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PET), 유리와 같은 자원을 분류해 수집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 고물상은 마당이라 불리는 야적장에 물질별로 쌓아두고 있다.
고물의 흐름은 생태계 물질 순환과 유사하다. 1차 고물상이 수집한 고물조각은 자원순환 단계의 상위 업체가 분류한 메뉴에 맞춰 판매된다. 예컨대 플라스틱은 PET,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필렌 등의 물질과 색깔로 구분해 전문 수지상에게 판매한다. 수지상은 매입한 플라스틱을 선별, 세척, 분리하고 잘게 쪼개서 얇은 조각(플라스틱을 잘게 쪼갠 형태)이나 펠릿(얇은 조각을 녹이고 길게 뽑아 작은 알갱이로 썬 형태)으로 만든다. 펠릿은 플라스틱 제조 공장으로 이동해 환생한다. 식품용기, 자동차, 전자제품 등이 된다. 종이는 수집한 폐지를 블록형태로 압축하는 파지압축장으로 이동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폐지블록은 제지업체로 보내져 재생종이나 골판지 박스가 되고, 택배상자로 옛 가정 집으로 돌아온다.
비철류인 알루미늄 깡통은 상위업체에서 압축된 후 제련소를 거쳐 깡통으로 재생되어 음료진열대에 오른다. 알루미늄 냄비와 프라이팬은 제련소를 거쳐 알루미늄괴로 만들어진다. 알루미늄합금은 우리가 생활하는 구조물의 주재료로 쓰인다. 스테인레스 냄비와 프라이팬은 제철소를 거쳐 다시 냄비와 프라이팬을 만드는데 쓰인다. 고철도 제철소를 거쳐 H빔과 철근 등의 건축자재로 돌아온다.
책상과 책장은 대형폐기물 배출 사이트와 계약된 업체에 의해 처리업체로 이동한다. 수도권에서 나온 목재가구들은 건설현장에서 쓰고 남은 구조목들이나 가구업체에서 나온 폐목재와 함께 파쇄되며, 톱밥이나 우드칩, 목재펠릿으로 가공된다. 톱밥과 우드칩은 공원이나 화단, 텃밭에서 식물을 위한 퇴비로 사용되며, 목재펠릿은 연료로 이용된다.
그러나 고물의 윤회는 어떤 경우 쉽지 않다. 버려지는 것 없이 모두 순환되어 돌아오지 않는다. 실질 재활용률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고물상에서 선별하는 과정, 상위 업체에서 선별·세척·분리·압축하는 과정, 이물질이 묻은 고물을 제거하는 과정, 혼합된 물질을 분리하는 과정을 거칠 때마다 재활용의 길에서 탈락된다.
실제로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 회수·선별된 양과 이들이 궁극적으로 재활용된 양 사이에는 꽤 차이가 난다. 울산시 발표에 의하면 2019년 회수된 재활용 가능 자원을 재활용 처리했더니 잔재물이 평균 42.1%나 발생했다. 회수된 쓰레기 가운데 절반이 약간 넘는 양만 재활용된 것이다. 환경공학자 이찬희·배우근의 2016년 연구 '우리나라 폐전기·전자제품에 대한 물질흐름분석'에 따르면, 철은 약 89.8%, 구리는 약 91.4%의 높은 재활용률을 보이는 반면 알루미늄은 약 56%로 재활용률이 낮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다른 금속과 합금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플라스틱류는 그보다 더 낮은 약 27.1%만 재활용된다. 환경부가 펴낸 2021년 '환경통계연감'에서 종이류의 재활용률은 47.7%, 유리류는 58.6%다. 플라스틱이나 종이의 경우 재활용 비율이 절반이 채 안 된다. 고물이 온전히 순환하기 위해서는 재활용품의 분리배출을 강조하는 동시에 품목에 따른 재활용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게 필수다. 이를 위해 상품 제조 단계에서 혼합된 소재를 사용하기보다는 재활용이 쉬운 단일한 소재로 제품을 생산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