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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지난 9일 종영한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이 주인공이었습니다. 지난 9일 종영한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이야기입니다. 공식 홈페이지는 기획 취지를 '우리 사회의 돈과 가난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물질'에 대한 것이라 납작하게 설명하기엔 다소 아쉽습니다. 어두운 권력과 맞서 싸워 권선징악을 이루는 중심에는 주인공 '세 자매'의 자매애와 여성 연대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허스펙티브는 '작은 아씨들'을 여성 서사 관점에서 들여다봤습니다.
① 여성을 위한 : 돕고 돕는 여성 인물들
드라마 속 여성들은 서로 돕고 돕습니다.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한국 사회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독점한 '원령가(家)'와 가난하고 힘 없는 세 자매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모습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세 자매가 끝까지 '거악'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자매애'였습니다. 첫째 오인주(김고은 분), 둘째 오인경(남지현 분), 셋째 오인혜(박지후 분)는 비록 가난하게 자라 악에 대항할 힘과 수단이 전무하지만, 서로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박재상(엄기준), 원상아(엄지원)를 비롯한 권력에 도전합니다.
극 중 우정으로 연결된 여성들도 서로를 애틋하게 살핍니다. 사내 왕따를 견디며 친해진 언니 진화영(추자현 분)이 죽은 채 발견된 후, 인주는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추적합니다. 원상아의 딸 효린은 인혜와 우정을 나누며 용기를 얻고, 마침내 집을 떠나면서 가정의 억압에서 해방됩니다. 세 자매가 경제적 위기에 빠질 때마다 척척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 분)의 존재는 또 어떻고요. 이 모든 여성 연대가 모여 세 자매는 마침내 탐욕과 음모로 가득한 정란회의 존재를 밝혀내고, 악행을 저지른 인물들은 벌을 받게 됩니다.
② 여성의 : 악역 끝판왕도, 찰나의 조연도 여성이었다
표면적으로 드라마는 유력 남성 정치인 박재상과 세 자매의 싸움을 그립니다. 화영이 자신이 관리하던 비자금 중 20억 원을 인주에게 남기고, 또 인주의 계좌에 정체불명의 비자금 700억 원이 입금되면서죠.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최종 보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바로 정치인 남편을 해맑게 '내조'하는 것으로 보였던 원상아가 모든 악행의 뿌리였던 거죠.
'작은 아씨들'에서는 찰나의 순간에도 여성 캐릭터가 활약합니다. 비자금을 횡령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던 인주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데요. 판결을 내리는 판사, 여성입니다. 그간 많은 드라마가 판검사 등 전문직, 권력을 휘두르는 조연 캐릭터를 남성으로 그린 것과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작은 아씨들'의 여성들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극 중에서 여성은 착한 사람도, 순진한 사람도, 악하다 못해 미쳐버린 사람도, 돈과 물질을 열렬히 욕망하는 사람도, 몸을 써서 경호를 하는 사람도,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도, 판관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과거 고정관념 속에 평면적으로 그려진 '신데렐라 스토리'나 '가부장적 주말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와 '작은 아씨들' 속 여성 인물들이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③ 여성에 의한 : 여성 제작진에 의해 완성된 서사
사실 시청자들은 방영 전부터 '작은 아씨들'이 선보일 특출난 여성 서사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김희원 감독, 정서경 작가'의 합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죠. 김 감독은 느와르 드라마 '빈센조'에서 사극 '왕이 된 남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연출한 스타 PD로, '여성 PD'도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산증인입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하녀' 등의 시나리오를 써 '박찬욱 사단'이라 불린 정서경 작가는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곧잘 드러냈습니다. 정 작가의 작품 속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 주인공이 주도하는 스토리 라인의 소모적 존재로 머물지 않습니다. 전체 서사를 끌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거나 기존 사회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기도 하죠. 세 자매와 원상아처럼요.
정 작가는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는데요. 12부작 종영 후 페미니즘 관점에서 '작은 아씨들'을 들여다보고 곱씹으니, 조금 더 색다른 감상이 들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