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이란 '반미 연대'

입력
2022.10.10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책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로 중국 러시아 이란 3국의 합세를 꼽았다. 거대한 반미, 반패권 3각 연대가 형성되면 미국 힘이 아시아 유럽 중동으로 분산되고 약화한다는 논리다. 이를 회피하기 위해 유라시아의 동서남에서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브레진스키 주문대로 미국 외교는 3개 지역에 집중됐다.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지난달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문제의 3국 정상이 참석했다. 세계인구 41%, 세계경제 24%를 차지하는 SCO는 2001년 반미 플랫폼 성격으로 출범한 기구다. 이란도 이번에 정회원으로 가입해 색깔을 분명히 했다. 전쟁을 제쳐두고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는 단극 체제를 만들려는 서방 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외견상 미국 패권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된 반미 3각 연대가 가동되는 듯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 무엇보다 3국 모두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하고 취약한 까닭이다. 반미 연대를 통해 주고받을 게 적지 않으나 그렇다고 전략적 운명을 같이할 여건은 아닌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회원국의 동질성과 발전을 강조했으나, 푸틴이 원한 군사적 지원은 거절했다. 서구도 이번 3국 만남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보수논객 로스 다우닷은 오히려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비(非)자유주의의 위기를 주장했다. 초기 우크라이나 사태는 서구 자유주의 쇠퇴와 분열, 중러의 부상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모스크바, 베이징, 테헤란에서 자유주의 대안의 길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고 있다고 다우닷은 비판했다.

□ 러시아 푸틴주의는 사이비 민주주의에 가깝고, 제로(0)코로나에서 드러난 중국 권위주의는 일당독재의 개인독재 우려를 낳고 있다. 이란의 히잡 시위 사태는 이슬람 혁명의 비참함을 상기시킬 뿐이다. 중국과 일본, 유럽과 러시아의 연대 우려가 사라지고, 미국의 세 번째 우려인 3국 연대마저 힘을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미국의 자신감일 수 있다. 최근 동맹마저 감안하지 않는 제재, 봉쇄로 주변을 흔들고 3국을 더 밀착시키면 브레진스키의 근심은 장차 현실이 될지 모른다.

이태규 논설위원